1990년대 초 부동산 위기
호황과 전환
1990년대 초의 부동산 위기는 1930년대 이후 스위스에서 가장 심각한 국내 은행 위기였다. 그 뿌리는 1980년대 후반에 있었다. 1987년 10월 19일 주식시장 폭락 이후 투자자들은 자본을 부동산으로 옮겼고, 스위스 국립은행(SNB)은 폭락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확장적 통화정책을 추구하였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1980년부터 1987년 사이에 거의 두 배로 올랐다. 단독주택과 자가 거주용 아파트의 가격은 1980년부터 1990년까지 10년 동안 두 배가 되었고, 은행들은 높은 담보인정비율의 주택담보대출로 이 호황에 자금을 대기 위해 경쟁하였다.1
전환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서 찾아왔다. 1990년 가을 소비자물가가 연 6.4퍼센트씩 오르고 있을 때, Markus Lusser 총재가 이끄는 국립은행은 통화 공급을 급격히 긴축함으로써 노선을 뒤집었다. 인플레이션은 1990년대 중반까지 1퍼센트 아래로 떨어졌으나, 그 대가로 경제는 1990년부터 1996년 사이에 3년간의 경기 침체와 그에 이은 3년간의 정체를 겪었다. 실업률은 전후 스위스에서 알려진 적 없는 수준인 약 5퍼센트까지 상승하였고, 그 후에도 약 3퍼센트의 구조적 실업률이 지속되었다. 1989년 한 해에만 재할인율이 3.5퍼센트에서 6퍼센트로 인상되었다.2 금리 상승은 시장 정점에서 부동산 자금을 조달한 차입자들을 강타하였고, 임대 수요의 붕괴는 은행들이 의존하던 담보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가치 하락은 극적이었다. 임대용 부동산은 1991년 이후 6년 동안 그 가치의 절반을 잃었으며, 시장은 1997년에야 바닥에 이르렀다.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은 1989년 전체 부동산 기준 0.4퍼센트에서 1993년 12퍼센트로 상승하였다. 1991년부터 1996년 사이에 은행들은 423억 스위스 프랑의 국내 여신을 상각하였는데, 이는 당시 스위스 국내총생산의 10퍼센트를 넘는 금액이었다. 부실채권은 전체 여신의 8.5퍼센트에 달하였다. 대형은행은 12.6퍼센트의 비율로 평균보다 더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3 마지막 수치는 강조할 가치가 있다. 이 수치가 위기를 소규모 은행의 문제로 보는 통념을 바로잡아 주기 때문이다. 대형은행도 타격을 입었지만, 그들은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분산과 준비금을 갖추고 있었고, 위기를 이용하여 더 약한 경쟁자들을 인수하였다.
Spar- und Leihkasse Thun
여신 문제를 대중적 충격으로 바꾸어 놓은 사건은 베른 오버란트(Berner Oberland)에서 일어났다. 1991년 10월 3일, 오늘날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의 전신인 연방은행위원회는 Spar- und Leihkasse Thun의 폐쇄를 명령하였고, 2주 후 이 은행의 인가를 취소하였다. 이 은행은 1980년대 호황기에 주택담보대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였고, 거품이 꺼지자 손실을 흡수할 수 없었다. 고객들은 닫힌 문 앞에서 자신의 저축을 걱정하였다. 그들 가운데 수천 명이 저축한 돈의 일부를 잃었다. 폐쇄가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베른의 연방의사당에서 일하던 한 수위는 훗날 그때를 자기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하였다.4
예금자들의 손실은 약 2억 2,000만 스위스 프랑으로 추산되었다.5 소액 저축자의 보호는 은행들 간의 사적 협약의 형태로만 존재하였다. 1984년 스위스은행가협회는 협약 XVIII을 채택하였는데, 이에 따라 은행 파산 시 회원 은행들이 저축 계좌와 급여 계좌를 3만 스위스 프랑까지 지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부담하였다. Thun 사건에서 협회는 7,900만 스위스 프랑을 선지급하였고, 이후 그 금액의 71퍼센트를 파산재단으로부터 회수하였다.6 이 사건은 이 정도 규모에서 한 번도 시험받은 적이 없는 자율규제 제도의 한계를 드러냈다. 또한 이 사건은 긴 입법 과정의 시작을 알렸다. 이 과정은 해외에서의 추가적인 파산 사태를 거쳐 오늘날과 같은 「은행법」상의 법정 예금자 보호로 이어졌다.
취리히 금융 중심지의 역사에서 Thun의 파산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사건은 해외에서 안정성과 신중함으로 명성을 쌓아 온 스위스 은행 시스템이 고전적인 뱅크런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둘째, 이 사건은 지역적으로 집중된 대출을 하는 소규모 은행이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감독 당국의 확신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확신은 1990년대의 나머지 기간 동안 감독 정책을 형성하였고, 당국이 대형은행의 부실 기관 인수를 수용하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인수가 집중도를 높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은행과 주(칸톤) 은행
Thun의 파산에 뒤이어 구제, 합병, 폐쇄의 물결이 일었다. 1990년에 존재하던 625개 은행 가운데 3분의 1이 1995년까지 사라졌고, 1990년대 초에 영업하던 약 200개의 지역은행 가운데 2000년까지 살아남은 것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였다.7 1994년 살아남은 지역은행 일부는 서비스를 공동화하고 자본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공동 지주회사를 설립하였다.8 다른 많은 지역 금융기관은 주립은행이나 대형은행에 흡수되었고, 그 결과 대형은행의 지방 지점망이 확대되었다.
주립은행은 각 주의 뒷받침을 받고 있었지만 위기를 피하지 못하였다. 『스위스 역사사전』(HLS)은 경제 위기와 부동산 시장의 붕괴가 주립은행들을 강타하여 그중 일부의 존립을 위협하였다고 지적하면서, 1992년의 베른과 2000년의 제네바를 그 예로 든다. 위기는 합병과 부분 민영화, 그리고 졸로투른주와 아펜첼아우서로덴주 주립은행의 소멸로 이어졌다. 주립은행의 수는 1990년 스물아홉 개에서 1999년 스물네 개로 줄었다.9 가장 많은 비용이 든 사례는 Berner Kantonalbank였다. 1993년 이 은행의 부실채권은 별도 회사인 Dezennium Finanz AG로 이전되었다. 총손실 26억 스위스 프랑은 은행 자체 준비금 11억 스위스 프랑과 베른주의 15억 스위스 프랑으로 충당되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국가 보증을 잃었다.10
1994년 12월 4일 졸로투른주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주립은행을 Swiss Bank Corporation에 매각하는 것을 승인한 후, 이 은행은 1995년 1월 1일 소멸하였다. 이 매각으로 주의 손실은 4억 스위스 프랑으로 제한되었으며, 구제를 택했다면 약 12억 스위스 프랑이 들었을 것으로 추산되었다. 6,000명의 참가증권(participation certificates) 보유자는 4,000만 스위스 프랑을 잃었다. 1995년 12월 아펜첼아우서로덴주는 수년간의 어려움 끝에 자신의 주립은행을 1억 8,000만 스위스 프랑에 Union Bank of Switzerland에 매각하였다. 그 어려움에는 토이펜 지점에서의 횡령과, 캐나다의 연어 양식장처럼 지역 은행업과 동떨어진 사업에 대한 투자가 포함되어 있었다.11 두 주립은행이 취리히와 바젤에 기반을 둔 대형은행에 매각된 것은 관련 금액을 넘어서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주립은행들은 19세기에 부분적으로 대형 상업은행의 힘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설립되었다. 그중 두 곳이 이제 바로 그 은행들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은 스위스 은행업의 세력 균형이 얼마나 크게 이동하였는지를 보여 주었다.
감독 당국의 대응
연방은행위원회는 국내 여신 위기로부터 스스로의 결론을 끌어냈다. 1990년대 이후 연방은행위원회는 모든 은행에 법정 최저 자본 요건을 최소 20퍼센트 이상 초과하는 완충 자본을 보유하도록 요구하였다.12 자본 규칙에 덧붙인 이러한 ‘스위스 피니시(Swiss finish)’는 지역은행과 주립은행의 손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훗날 2008년 이후 대형은행에 부과된 훨씬 더 엄격한 요건의 모델이 된다. 위기는 또한 주택담보대출 리스크의 집중에 대한 당국의 주의를 날카롭게 하였다. 그러한 주의는 결코 사라진 적이 없다. 스위스에서 부동산 시장은 지금도 Thun의 기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불안감 속에서 주시되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대형은행의 통합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선이 있다. 다섯 대형은행 가운데 가장 약했던 Schweizerische Volksbank는 부동산 대출에 대해 쌓아야 했던 충당금 때문에 무너졌다. Bank Leu는 위기가 정점에 이르기 전에 이미 흡수되었다. 지역은행들은 더 큰 기관에 스스로를 매각하였다. 따라서 위기는 가속 장치로 작용하였다. 위기는 선도적인 세 은행의 소규모 경쟁자들을 제거하였고, 주립은행들을 수년간 약화시켰으며, 국내 시장을 더 적고 더 큰 참여자들의 손에 남겼다. 선도적인 세 은행이 위기를 견뎌 낸 취리히 금융 중심지에 있어서, 그 결과는 시장 지배력과 자본과 인재가 이 도시에 더욱 집중되는 것이었다.
주석
- Finanz und Wirtschaft, “Die Schweizer Immobilienblase der Neunzigerjahre”, https://www.fuw.ch/article/die-schweizer-immobilienblase-der-neunzigerjahre; watson.ch, “Inflation, Immobilienblase, Bankencrash: So schlimm war die Wirtschaftskrise der 90er Jahre”, https://www.watson.ch/wirtschaft/schweiz/827854431-inflation-immobilienblase-bankencrash-so-schlimm-war-die-wirtschaftskrise-der-90er-jahre. ↩
- watson.ch, “Inflation, Immobilienblase, Bankencrash”, 앞의 글; Finanz und Wirtschaft, “Die Schweizer Immobilienblase der Neunzigerjahre”, 앞의 글. ↩
- Finanz und Wirtschaft, “Die Schweizer Immobilienblase der Neunzigerjahre”, 앞의 글. 이 기사는 스위스 연방은행위원회와 스위스 국립은행(SNB)의 수치에 근거하고 있다. ↩
- Bilanz, “Wie eine Thuner Regionalbank zum Symbol der Krise wurde”, https://www.bilanz.ch/invest/wie-eine-thuner-regionalbank-zum-symbol-der-krise-wurde/wx1sm12. 이 기사는 이 파산을 “das Lehman Brothers der Schweiz”라고 표현한다; SWI swissinfo.ch, “Ein Bankensturm in der Schweiz – könnte es wieder passieren?”, https://www.swissinfo.ch/ger/wirtschaft/spar-und-leihkasse-thun_ein-bankensturm-in-der-schweiz-koennte-es-wieder-passieren/42501688. ↩
- Finanz und Wirtschaft, “Die Schweizer Immobilienblase der Neunzigerjahre”, 앞의 글. ↩
- esisuisse, “Geschichte”, https://www.esisuisse.ch/de/ueber-uns/geschichte. 스위스 은행 및 증권회사의 예금보험 제도인 esisuisse는 2005년 스위스은행가협회로부터 예금자 보호의 외부 자금 조달 업무를 넘겨받았다. ↩
- Finanz und Wirtschaft, “Die Schweizer Immobilienblase der Neunzigerjahre”, 앞의 글. 이 기사의 수치는 기준일이 다르기 때문에 『스위스 역사사전』의 수치와 약간 차이가 있다. ↩
- HLS, “Banken”, 앞의 글. ↩
- HLS, “Kantonalbanken”, 앞의 글. ↩
- SRF News, “Immer wieder fallen Kantonalbanken auf die Nase”, https://www.srf.ch/news/wirtschaft/blkb-debakel-kein-einzelfall-immer-wieder-fallen-kantonalbanken-auf-die-nase. ↩
- SRF News, “Immer wieder fallen Kantonalbanken auf die Nase”, 앞의 글. 같은 보도는 이후 Banque Cantonale Vaudoise의 손실도 서술하고 있는데, 이 은행은 2002년 12억 5,000만 스위스 프랑의 주 정부 지원을 필요로 하였다. ↩
-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 “Finanzmarktkrise und Finanzmarktaufsicht”, 2009년 9월 14일 보고서, https://www.finma.ch/de/~/media/finma/dokumente/dokumentencenter/myfinma/finma-publikationen/aufsichtsberichte/bericht01_finanzmarktkrise-und-finanzmarktaufsicht_endversion_d.pdf?la=de. ↩
일반적인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글은 법률 또는 세무 자문에 해당하지 않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자문을 대체하지 않고,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위임 관계를 성립시키지 않습니다. 이 글은 2026년 10월 기준의 법적 상황을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