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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질서의 오랜 존속과 그 유산

4세기 반의 역사

브룬이 만들고 1373년, 1393년, 1489년, 1498년에 개정된 길드 헌정 체제는 종교개혁, 30년 전쟁,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존속하였다. 이 체제는 거듭된 개정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였다. 1790년의 골격은 1498년의 그것과 뚜렷이 같았다. 즉 12개 길드와 콘스타펠(Constaffel)을 통해 선출되는 소평의회와 대평의회, 두 명의 시장, 그리고 선서로 결속된 시민 공동체가 그것이다. 15세기에 이르러 소평의회는 각 24명으로 구성된 두 개의 반으로 재편되어 6개월마다 교대하였으며, 길드장, 콘스타펠 대표, 그리고 대평의회에서 선출된 평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이 구조는 일부 조정을 거치며 구체제가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다.1 이 헌정 체제가 통치한 도시의 인구는 적은 수준에 머물렀다. 1408년경 약 5,700명, 1467년 약 4,750명, 1529년 5,100명이었고, 1762년에 이르러 약 11,500명으로 늘었다.2 1769년 취리히의 주민은 10,579명이었고 수공업자는 약 1,100명이었다. 13개 단체로 조직된 수천 명의 시민이 10만 명을 훨씬 넘는 농촌 주민이 사는 영역을 통치한 것이다.

종말은 외부에서 왔다. 1798년 2월 3일, 프랑스의 정세와 농촌 지역의 혁명 운동의 압력 아래 취리히 당국은 보다 넓은 영업의 자유를 포함한 개혁을 발표하였다. 일부 길드 구성원은 무력 저항을 고려하였고, 다른 구성원들은 길드의 공동 재산을 구성원들 사이에 분배할지를 두고 논쟁하였다. 특히 재단사 길드에서는 구성원들이 공동 재산을 선조들이 자신들에게 맡긴 유산, 곧 “anvertrautes Erbgut”로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 프랑스의 침공과 도시와 농촌 간의 평등을 요구한 내부 혁명은 도시국가를 해체하였다.4 1798년 10월 19일 헬베티아 공화국은 길드 강제 가입 제도를 폐지하였고, 영업 및 산업의 자유는 최종적으로 1874년 연방헌법에 규정되었다.5

그러나 길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마이젠(Meisen) 길드는 1801년 협회로 재결성되었다.6 1815년부터 1830–1831년 자유주의 혁명에 이르는 왕정복고기에 콘스타펠과 길드들은 선거 단체로서의 역할을 되찾았으며, 콘스타펠은 13개 선거 길드 가운데 하나로 복원되었다.7 길드들은 1860년대에 국가 내에서의 마지막 기능을 잃고 민간 단체로 존속하였다. 1867년부터 도시와 1893년 및 1934년에 편입된 교외 지역에서 새로운 길드가 설립되어, 오늘날에는 26개의 길드와 협회가 Zentralkomitee der Zünfte Zürichs(취리히 길드 중앙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8 콘스타펠은 1841년 사교 단체로 재조직되었고, 1899년부터 Gesellschaft zur Constaffel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콘스타펠은 1868년 춤 뤼덴(zum Rüden) 회관을 시에 매각하였다가 1937년 다시 사들였다.9

젝세로이텐

길드 질서가 남긴 가장 눈에 띄는 유산은 춘분 다음 월요일에 열리는 봄 축제 젝세로이텐(Sechseläuten)이다. 그 이름은 노동 시간 규정을 상기시킨다. 춘분부터 시작되는 여름 반년 동안 그로스뮌스터의 종이 6시에 일과의 끝을 알렸던 것이다. 정육업자 길드는 이 규정을 13세기 또는 14세기의 수공업 조례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반면, 시의 관광청은 이를 16세기로 본다.10 어느 쪽이든 이 축제는 길드의 달력이 도시 전체의 노동 리듬을 지배하던 시기를 기념한다. 오늘날의 형태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1839년 콘스타펠과 모든 길드가 처음으로 린덴호프에 함께 모였다. 겨울을 상징하는 눈사람 인형 뵈그(Böögg)를 태우는 행사는 원래 별개의 어린이 풍습이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길드 축제와 합쳐졌다. 1902년부터 뵈그는 오늘날 젝세로이텐 광장(Sechseläutenplatz)으로 불리는 광장에서 태워지고 있다. 현재 약 3,500명의 길드 구성원이 역사적 의상을 입고 구시가지를 행진한다.

길드 회관과 금융 중심지의 네트워크

축제 외에도 길드들은 취리히 기득권층의 사교 네트워크로 남아 왔다. 가입은 초청과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입 희망자는 손님으로 행사에 참석한 뒤 구성원들의 투표에 의해 가입이 허용되거나 거부된다.11 리마트강과 뮌스터호프에 있는 길드 회관들, 곧 자프란(Saffran), 마이젠, 뤼덴, 침머로이텐(Zimmerleuten) 등은 변호사, 은행가, 기업인, 공무원, 정치인이 여러 세대에 걸쳐 길드 만찬과 젝세로이텐에서 만나 온 장소이다. 이들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언론은 Urs Rohner와 Walter Kielholz를 비롯한 Credit Suisse의 주요 인사들을 길드와 연결지어 보도해 왔다. 2023년 이 은행의 붕괴는 옛 취리히 기득권층의 쇠퇴에 관한 논평을 불러일으켰는데, 길드, 자유당, Neue Zürcher Zeitung, 그리고 대형 은행들이 그 기득권층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12 반면 역사학자 Helmut Meyer는 숨겨진 길드 권력이라는 관념을 환상으로 일축하며, 헤드헌터들은 길드 가입 여부를 묻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두 견해 모두 일리가 있다. 취리히 금융기관의 고위 경영진 채용은 1990년대 이후 국제화되어 더 이상 옛 네트워크의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길드 회관은 기업, 직업, 정당의 경계를 넘어 신뢰가 구축되는 장소로 남아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금융 중심지에서 네트워크가 언제나 수행해 온 역할이다.

길드들은 또한 Ogilvie가 역사적 길드의 본질적 특징으로 지목한 배제의 문제와도 마주해야 했다. 최근까지 취리히의 모든 길드는 남성 단체였다. Gesellschaft zu Fraumünster는 1989년 여성 단체로 설립되었고, 2014년부터 공식적으로는 콘스타펠의 손님 자격으로 젝세로이텐 행렬에 참가해 왔다.13 2025년 2월, 약 200명의 구성원을 둔 가장 큰 길드인 Zunft zur Meisen은 임시총회에서 88%의 찬성으로 여성을 남성과 동일한 조건의 정회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취리히 길드 가운데 처음이었다. 다만 Zunft Höngg는 이미 2024년에 경과 규정을 두어 여성의 가입을 승인한 바 있다.14 뮌스터호프에 있는 회관에서 여왕들과 총리들을 맞이해 온 포도주 상인 및 여관업자 길드가 이 변화를 이끌었다는 사실은, 1336년의 제도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것들을 보존해 온 협상에 의한 적응을 여전히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헌정적 유산

길드 질서의 보다 깊은 유산은 통치의 관행에 있다. 네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합의제(collegiality)이다. 1373년 이후 취리히는 교대로 재임하는 두 명의 시장과 반년마다 교체되는 평의회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그 결과 어떤 개인의 직위도 오랫동안 결정적 권한을 갖지 못하였다. 오늘날 취리히시와 취리히주(칸톤)는 합의제 집행기관에 의해 통치되며, 연방평의회도 같은 원칙을 따른다. 강력한 이사회와 이사회 의장 및 최고경영자의 분리를 특징으로 하는 취리히 대형 금융기관의 지배구조 역시 분산된 권한을 선호하는 비슷한 경향을 반영한다.15 둘째는 합의이다. 길드장의 선출에는 일반 구성원의 동의가 필요했고, 헌정 체제는 협상을 통해 개정되고 선서를 통해 갱신되었다. 입법에 앞서 폭넓은 합의를 구하는 스위스의 관행은 금융 중심지의 규제를 형성하고 있으며, 같은 전통에 속한다. 취리히 주립문서고(Staatsarchiv)는 취리히 모델을 아래로부터 성장한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기술한다.16

셋째 특징은 권력 집중에 대한 불신이다. 브룬의 종신 시장직은 그가 사망한 지 15년 안에 폐지되었고, 발트만의 개인 통치는 처형대에서 끝났다. 이 교훈은 매우 철저히 학습되어, 취리히는 그 후 수세기 동안 통치자 왕조를 배출하지 않았다. 권력은 가문, 길드, 평의회에 속했으며 공유되었다. 넷째 특징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공직의 결합이다. 4세기 반 동안 시장을 규제한 사람들은 그 시장에서 일하거나 그 이윤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상업에 대한 깊은 지식과 도시의 번영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지닌 통치 계층을 낳았다. 그러나 같은 결합은 보호주의와 배제를 낳았고, 18세기에는 금리생활자의 과두정을 낳기도 하였다. 업계 단체들이 오랫동안 규칙을 작성하고 감독기관이 이를 최소 기준으로 인정해 온 스위스 금융 부문의 자율규제 체계는, 이 전통의 먼 그러나 알아볼 수 있는 후손이다.17

이 책의 자매편의 주제인 제네바와 간략히 비교하면 요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제네바는 결코 길드 도시가 되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소수의 가문이 지배하는 도시 평의회가 위에서 수공업을 규제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 도시의 부를 일군 상인과 은행가들은 귀족 공화정의 틀 안에서 활동하였다.18 반면 취리히의 상업 엘리트는 길드를 통해 권력을 잡았고 길드에 계속 결속되어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취리히의 금융 중심지가 19세기에 등장했을 때 보다 넓은 시민적·산업적 기반에서 성장한 반면, 제네바의 금융 중심지는 보다 좁은 프라이빗 뱅커 집단에서 성장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석

  1. Otto Sigg, “Zunftherrlichkeit” (1986), https://www.zuerich-geschichte.info/pdfs/Zunftherrlichkeit.pdf. 저자는 1441년 이후 소평의회가 각 반마다 12명의 길드장, 2명의 콘스타펠 대표, 대평의회에서 선출된 6명의 길드 평의원과 1명의 콘스타펠 평의원, 그리고 자유롭게 선임된 3명의 평의원으로 구성되었다고 기술한다. ↩
  2. 스위스 역사사전(HLS), “Zürich (Gemeinde)”, 인구표, https://hls-dhs-dss.ch/de/articles/000171/2015-01-25/. ↩
  3. Otto Sigg, “Zunftherrlichkeit” (1986), https://www.zuerich-geschichte.info/pdfs/Zunftherrlichkeit.pdf. ↩
  4. Staatsarchiv des Kantons Zürich (편), Kleine Zürcher Verfassungsgeschichte 1218–2000 (2000), https://www.zh.ch/content/dam/zhweb/bilder-dokumente/themen/politik-staat/recherche-im-staatsarchiv/z%C3%BCrcher-geschichte/zh_verfassungsgeschichte.pdf. ↩
  5. HLS, “Handwerk” (Anne-Marie Dubler), https://hls-dhs-dss.ch/articles/013954. ↩
  6. Zunft zur Meisen, “Zunfthaus”, https://www.meisen.ch/zunfthaus. ↩
  7. HLS, “Konstaffel” (Martin Illi), http://www.hls-dhs-dss.ch/textes/d/D10249.php. ↩
  8. Zentralkomitee der Zünfte Zürichs, “Zunftporträts”, https://www.sechselaeuten.ch/de/zuenfte, 및 “Geschichte”, https://www.sechselaeuten.ch/de/wissenswertes/geschichte. ↩
  9. HLS, “Konstaffel” (Martin Illi), http://www.hls-dhs-dss.ch/textes/d/D10249.php; Wikipedia, “Haus zum Rüden”, https://en.wikipedia.org/wiki/Haus_zum_R%C3%BCden. ↩
  10. Zunft zum Widder, “Sechseläuten”, https://www.zunft-widder.ch/historisch-sechselaeuten.html; Zürich Tourismus, “Sechseläuten – Das Zürcher Frühlingsfest”, https://www.zuerich.com/de/events-nachtleben/typische-events/sechselaeuten. ↩
  11. Lukas Hässig, “Oberstrass-Zunft lehnte Urs Rohner ab”, Inside Paradeplatz, 2019년 12월 27일, https://insideparadeplatz.ch/2019/12/27/oberstrass-zunft-lehnte-urs-rohner-ab/. 이 기사는 가입 절차를 기술하고 있다. ↩
  12. Tages-Anzeiger, “Welchen Einfluss haben die Zürcher Zünfte heute noch?”, https://www.tagesanzeiger.ch/welchen-einfluss-haben-die-zuercher-zuenfte-heute-noch-442924799238; Peter Hossli, “Swissair, GC und CS heruntergewirtschaftet – am Sechseläuten wieder hoch zu Ross”, Blick, 2023년 4월 17일, https://www.blick.ch/politik/swissair-gc-und-cs-heruntergewirtschaftet-am-sechselaeuten-wieder-hoch-zu-ross-zuercher-elite-zelebriert-ihren-zerfall-id18492726.html. ↩
  13. Limmattaler Zeitung, “Zunftwesen: Die Zürcher Zunft zur Meisen stellt nun die Frauenfrage”, 2022년 1월, https://www.limmattalerzeitung.ch/limmattal/zuerich/zunftwesen-die-zuercher-zunft-zur-meisen-stellt-nun-die-frauenfrage-ld.2200946. ↩
  14. SRF News, “Keine reine Männersache mehr: Erste Zürcher Zunft nimmt Frauen offiziell als Mitglieder auf”, 2025년 2월 6일, https://www.srf.ch/news/schweiz/keine-reine-maennersache-mehr-erste-zuercher-zunft-nimmt-frauen-offiziell-als-mitglieder-auf. ↩
  15. 취리히의 시 집행부(Stadtrat)와 주 정부(Regierungsrat), 그리고 연방평의회의 합의제 구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스위스 은행에서 이사회와 업무집행 경영진의 분리는 2014년 4월 30일 「은행법 시행령」(BankV, SR 952.02) 제11조 제2항에 규정되어 있다. “Kein Mitglied des für die Oberleitung, Aufsicht und Kontrolle verantwortlichen Organs einer Bank darf dem Organ angehören, das mit der Geschäftsführung betraut ist”, LexFind, https://www.lexfind.ch/tolv/149083/de (2016년 1월 1일 현재 버전). ↩
  16. Staatsarchiv des Kantons Zürich (편), Kleine Zürcher Verfassungsgeschichte 1218–2000 (2000), https://www.zh.ch/content/dam/zhweb/bilder-dokumente/themen/politik-staat/recherche-im-staatsarchiv/z%C3%BCrcher-geschichte/zh_verfassungsgeschichte.pdf. ↩
  17. 2007년 6월 22일 「연방 금융시장감독청법」(FINMASA) 제7조 제3항: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은 “자율규제를 지원하며, 그 감독 권한의 범위 내에서 이를 최소 기준으로 인정하고 시행할 수 있다”, droit-bilingue.ch, https://droit-bilingue.ch/en-de/9/95/956.1-7-10.html; FINMA, “FINMA anerkennt Selbstregulierungen aus der Vermögensverwaltungsbranche”, 2009년 4월 27일, https://www.finma.ch/de/news/2009/04/aktuell-selbstregulierungen-20090427/. 이 보도자료는 FINMA 회람 2008/10 “Selbstregulierung als Mindeststandard”를 언급한다. 길드 전통과의 역사적 연관성은 필자의 해석이다. ↩
  18. HLS, “Zünfte” (Katharina Simon-Muscheid), https://hls-dhs-dss.ch/de/articles/013729/2015-02-03/: 16세기 후반 제네바의 길드들은 1557년부터 당국의 통제 아래 있었으며 정치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 HLS, “Genfer Revolutionen” (Dominique Quadroni), https://hls-dhs-dss.ch/de/articles/026890/2012-05-10/은 “eine Minderheit von Patriziern … die ganze Macht auf sich konzentrierte”한 18세기의 체제를 기술한다. HLS, “Villes corporatives”, https://hls-dhs-dss.ch/textes/f/F9917.php는 제네바를 길드 도시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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