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소 협회(Effektenbörsenverein)와 최초의 거래소 건물
취리히 거래소의 설립 연도
취리히 증권거래소가 정확히 언제 설립되었는가는 하나의 답이 없는 질문이다. 문헌에 나오는 각 연도는 점진적인 과정의 서로 다른 단계를 가리킨다. 스위스 역사사전(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 HLS)은 국가의 인가 아래 거래가 시작된 1884년을 제시한다.1 SIX Swiss Exchange에 관한 영어판 Wikipedia 문서와 여러 실무 문헌은 1873년을 제시하며, 스위스 금융박물관(Swiss Finance Museum)은 협회 설립 연도로 1855년을, 취리히 거래소가 공식 시세표에 처음 등장한 연도로 1877년을 든다.2 취리히 증권거래소협회(Effektenbörsenverein Zürich) 스스로는 그 시작을 1877년으로 보았다. 한스 루돌프 슈미트(Hans Rudolf Schmid)와 리하르트 T. 마이어(Richard T. Meier)가 집필한 협회의 공식 역사서는 거래소 100주년을 맞아 출간되었으며, 1977년 6월 30일자 시세표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는 “Zum Gründungsjahr der Zürcher Börse”라는 제목의 장이 있는데, 이는 거래소가 첫 100년을 돌아볼 때 이미 설립 연도가 논의의 대상이었음을 보여 준다.3
이러한 불일치는 역사가뿐 아니라 법률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취리히 거래소가 여러 층위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먼저 상인들의 사적 협회가 생겼다(1855년). 다음으로 독자적인 규칙과 시세표를 갖춘 증권 거래인들의 별도 협회가 생겼다(1877년). 이어서 전용 건물이 세워졌고(1880년), 마지막으로 거래를 공적 감독 아래의 인가 활동으로 만든 주(칸톤) 법률이 제정되었다(1883년, 거래에 대해서는 1884년부터 시행). 각 층위는 서로 다른 종류의 권위를 더하였다. 상인 공동체의 사회적 권위, 협회 규칙의 계약적 권위, 가격이 형성되는 장소의 물리적 권위, 그리고 국가의 법적 권위가 그것이다. 현대의 거래소 규제도 여전히 이 요소들을 구별한다. 현대의 형태는 매우 다르지만, 거래시설의 운영자, 그 규정집, 그 기술 인프라, 그리고 그에 대한 공적 감독은 여전히 별개의 법적 대상이다.
취리히 증권거래소협회
취리히 증권거래소협회는 취리히 거래소에서 거래하던 증권 딜러, 은행가 및 중개인의 협회였다. 협회 규칙에 따라 회원은 거래장에 입장할 수 있었고, 위원회가 시장 관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였으며, 시세표가 발간되었다. 100주년사는 협회의 설립을 1873년 취리히 상인협회(Kaufmännische Gesellschaft)의 창설 직후, 그리고 최초의 거래소 건물 건축에 관한 서술 앞에 배치한다. 이후의 스위스 모델에서 협회는 시장의 민간 운영자로 남았고, 주(칸톤)는 인가를 내주고 거래를 감독하였다. 증권거래소협회는 1990년대 스위스 거래소들이 통합될 때까지 이 역할을 수행하며 존속하였다. 그 긴 수명으로 협회는 취리히 금융 중심지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기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협회의 회원은 처음에는 주로 독립 중개인과 프라이빗 뱅커였다. 대형 은행은 아직 거래장에서 지배적이지 않았다. 100주년사에는 “Ein Streit um die Courtage bringt die Banken in die Börse”라는 제목의 장이 있는데, 이는 국가 거래소 초기에 중개 수수료를 둘러싼 분쟁이 계기가 되어 은행들이 직접 회원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4 이러한 전개는 독립 증권중개인(agents de change)이 20세기에 들어서도 한참 동안 거래소의 중심을 이루었던 제네바와 취리히를 구별 짓는다. 양차 대전 사이 시기의 제네바 거래소에 관한 킴 오스테를링크(Kim Oosterlinck)와 위그 피로트(Hugues Pirotte)의 연구는 시장 접근을 둘러싼 제네바의 독립 중개인과 독일어권 스위스 은행 간의 갈등을 서술한다.5 그 갈등의 뿌리는 1914년 이전 두 도시에서 형성된 서로 다른 회원 구조에 있다.
반호프슈트라세의 거래소 건물, 1877–1880년
거래소가 세워진 반호프슈트라세(Bahnhofstrasse) 자체가 철도 시대와 자유주의 도시의 산물이었다. 이 거리는 1864년 도시 성곽이 철거되고 성벽 앞의 해자인 프뢰셴그라벤(Fröschengraben)이 메워진 뒤에 생겨났다.6 20년이 채 안 되어 이 새 거리는 취리히 금융기관들의 주소지가 되었다. 스위스 역사사전은 1860년부터 1890년 사이의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반호프슈트라세 자체(1864년부터), 파라데플라츠(Paradeplatz)의 크레디탄슈탈트 건물(1873–1875년), 그리고 거래소와 반호프슈트라세 상부 구간(1880–1890년)을 든다.7 같은 시기에 도시는 급속히 성장하였다. 현재의 기초자치단체(게마인데) 구역을 기준으로 취리히의 인구는 1870년 6만 5,668명에서 1888년 10만 3,862명으로 늘어났다.8
반호프슈트라세 3번지의 거래소 건물은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의 제자 알베르트 뮐러(Albert Müller)와 카스파르 콘라트 울리히(Caspar Conrad Ulrich)의 설계로 1877년부터 1880년 사이에 세워졌다. 둥근 모서리 탑을 갖춘 신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당대 취리히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그 중심에는 약 22×35미터 크기에 높이 17미터에 이르는 기념비적인 거래 홀이 있었다.9 이런 규모의 홀은 포부의 표명이었다. 그것은 취리히의 상인과 은행가들이 자신들의 시장이 성장하리라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도시의 새로운 대표 거리에서 거래소에 공적 존재감을 부여하였다. 건물은 크레디탄슈탈트, 그리고 철도 자본의 상당 부분이 조달된 기차역에서 걸어서 조금만 가면 되는 곳에 있었다. 이 건물은 1930년 블라이허베크(Bleicherweg)의 새 건물로 거래가 옮겨 갈 때까지 50년 동안 거래소로 쓰였다.10
이 건물의 이후 운명 또한 금융 중심지 역사의 일부이다. 거래소가 떠난 뒤 반대에도 불구하고 홀은 철거되었고, 건축가 비트머(Witmer)와 젠(Senn)은 1932년 이 건물을 은행 건물로 개조하였다.11 오늘날 이 건물은 1799년의 구호협회(Hülfsgesellschaft)와 취리히시 저축은행(Sparkasse der Stadt Zürich)의 후신인 바우가르텐 재단(Baugarten)이 소유하고 있다. 전면적인 개보수를 거쳐 2025년 초에 백화점과 미국계 투자은행의 취리히 사무소를 임차인으로 하여 다시 문을 열었다.12 거래 홀에서 은행으로, 다시 국제 투자은행에 임대된 건물로 이어진 용도의 변천은 150년에 걸친 금융 중심지의 변모를 요약해 보여 준다.
주석
- HLS, Meyerhans, “Börsen”, http://www.hls-dhs-dss.ch/textes/d/D13741.php. ↩
- “SIX Swiss Exchange”, Wikipedia(영어판), https://en.wikipedia.org/wiki/SIX_Swiss_Exchange. Swiss Finance Museum, “The history of trading”, https://www.finanzmuseum.ch/en/home/visit/guided-tours/history-of-trading.html. ↩
- Schmid, Meier, Die Geschichte der Zürcher Börse, 목차(“Zum Gründungsjahr der Zürcher Börse”, “Zehn Jahrzehnte Börsengeschehen”, “Die Zürcher Börse an der Schwelle zum zweiten Jahrhundert” 각 장 포함), https://urn.ub.unibe.ch/urn:ch:slsp:zbz:991132393929705501:ihv:pdf. ↩
- Schmid, Meier, Die Geschichte der Zürcher Börse, 목차, https://urn.ub.unibe.ch/urn:ch:slsp:zbz:991132393929705501:ihv:pdf. 이 장은 “Die Anfänge der Staatsbörse” 다음, “Das Eisenbahnfieber um 1890” 앞에 위치한다. ↩
- Kim Oosterlinck, Hugues Pirotte, “Stock exchange competition: the case of Geneva during the interwar period”, Financial History Review 25 (2018), no. 2, 183–201쪽, 초록,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financial-history-review/article/stock-exchange-competition-the-case-of-geneva-during-the-interwar-period/79BA46400B6B70947B0F9942754E51A3/core-reader. ↩
- “Bahnhofstrasse”, Wikipedia(영어판), https://en.wikipedia.org/wiki/Bahnhofstrasse. ↩
- HLS, Behrens, “Zürich (Gemeinde)”, http://www.hls-dhs-dss.ch/textes/d/D171.php. ↩
- HLS, Nicola Behrens, Andreas Motschi, Max Schultheiss, “Zürich (Gemeinde)”, 2015년 1월 25일 판, https://hls-dhs-dss.ch/de/articles/000171/, 인구표(2000년 기준 구역에 따른 1850–2000년 수치). ↩
- swiss-arc.ch, “In die Gegenwart geholt – über die Transformation der Alten Börse Zürich des Studios Märkli”, https://www.swiss-arc.ch/de/fachwissen-szene-artikel/architekturkritik/in-die-gegenwart-geholt-ueber-die-transformation-der-alten-boerse-zuerich-des-studios-maerkli/49390412. ↩
- WaltGalmarini, “Former Stock Exchange, Bahnhofstrasse 3, Zurich”, https://www.waltgalmarini.ch/en/portfolio/bahnhofstrasse_3/. 이 회사의 설명은 이 건물을 스위스 “최초의 증권거래소(first stock exchange)”라고 부르는데, 이는 취리히 최초의 거래소 전용 건물이라는 의미에서만 옳다. 제네바에는 그보다 20년 앞서 조직화된 거래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
- swiss-arc.ch, “In die Gegenwart geholt”, https://www.swiss-arc.ch/de/fachwissen-szene-artikel/architekturkritik/in-die-gegenwart-geholt-ueber-die-transformation-der-alten-boerse-zuerich-des-studios-maerkli/49390412. ↩
- Baugarten Zürich, “Über uns / About us”, https://www.baugarten-zuerich.ch/en/ueber-uns. 이 재단의 설명은 그 기원을 1799년 취리히의 15개 가문이 설립한 구호협회와 1805년에 창설된 저축은행(Ersparniscassa)에서 찾는다. ↩
일반적인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글은 법률 또는 세무 자문에 해당하지 않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자문을 대체하지 않고,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위임 관계를 성립시키지 않습니다. 이 글은 2026년 10월 기준의 법적 상황을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