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거래소 협회(Börsenverein)와 취리히 최초의 증권시장
공적 목적을 지닌 상인 협회
취리히에서 결정적인 한 걸음은 1855년에 내디뎌졌다. 그해 취리히의 상인들이 취리히 거래소협회(Börsenverein Zürich)를 설립한 것이다. 스위스 역사사전(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 HLS)은 이 협회를 1662년의 옛 상인이사회(Kaufmännisches Direktorium)에 뒤이어 19세기 중엽에 등장한 근대적 경제단체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1 SIX의 스위스 금융박물관(Swiss Finance Museum)도 “취리히 증권거래소협회(Zurich Stock Exchange Association)”의 설립을 같은 해로 본다.2 이 연도가 중요한 것은 폴리테크니쿰(Polytechnikum)의 설립(D.III장)과 겹치고, 스위스 크레디탄슈탈트(Schweizerische Kreditanstalt)의 설립(D.II장)보다 1년 앞서기 때문이다. 2년 사이에 취리히는 훗날 금융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떠받칠 세 가지 기관을 갖추었다. 조직화된 시장, 대형 상업은행 겸 투자은행, 그리고 시장이 자금을 댈 사업을 수행할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학교가 그것이다.
1855년의 거래소협회는 정기적으로 모여 상품, 환어음, 그리고 점차 새로운 철도 및 은행 증권을 거래하던 상인들의 협회였다. 거래소 100주년사는 “Zürcher Börsenkomitee und der Börsenverein von 1855”, 적절한 장소의 물색, 옛 중개인 입법의 “조용한 매장(埋葬)”, 그리고 1870년까지의 거래소, 협회 및 시세표의 발전에 각각 별도의 장을 할애하고 있다.3 이 장 제목들은 당시의 주요 특징을 드러낸다. 취리히에는 거래소 건물이 없었으므로 협회는 모임을 가질 공간을 찾아야 했다. 협회는 거래가 체결된 가격을 게재한 시세표(Kursblatt)를 발간하였고, 이는 취리히 증권의 가치에 관한 최초의 공적 기준이 되었다. 중개인 규정(Sensalenordnungen)에서 물려받은 옛 중개인 규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지 않은 채 사문화되었다. 자유주의 경제사상과 재생(Regeneration) 시대가 도입한 영업의 자유가 구체제의 동업조합적 질서가 들어설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주년사는 옛 중개업에서 새로운 거래소로 넘어가는 대목에 “Ordnungszwang trotz Gewerbefreiheit”라는 제목의 장을 두고 있다. 이 표현은 취리히 거래소가 이후 반세기 동안 직면하게 될 문제를 포착한다. 영업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누구나 증권 중개인으로 활동할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가격이 공표되고 신뢰되는 시장이라면 누가 거래할 수 있는지, 거래를 어떻게 기록하는지, 분쟁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관한 규칙이 필요하였다. 거래소협회는 처음에 회원을 구속하는 사적 규칙으로 이 필요에 대응하였다. 그 결과 거래소는 상인과 은행가의 클럽이 되었고, 그 권위는 소속 구성원의 평판에 기초하였다.
거래소협회에서 상공회의소로
거래소협회는 곧 단순한 거래 단체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협회는 1870년 스위스 상공업협회(Schweizerischer Handels- und Industrie-Verein)의 설립에 참여하였다. 스위스 역사사전은 이 협회를 수십 년 동안 가장 중요한 스위스 경제단체였다고 평가하며, 수출 지향적 집단의 주도로 설립되어 취리히에 본부를 두었다고 기술한다.4 1873년 거래소협회는 독립적으로 조직된 상공회의소인 취리히 상인협회(Kaufmännische Gesellschaft Zürich)의 설립을 주도하였고, 이 단체는 1919년 취리히 상공회의소(Zürcher Handelskammer)로 이름을 바꾸었다.5 스위스 역사사전은 상공회의소를 사법(私法)에 따라 조직된 지역 단위, 대개 주(칸톤) 단위의 단체로 설명한다. 이들 단체는 당국에 대하여 산업, 무역 및 서비스업의 이익을 대변하며, 1848년과 1874년의 연방헌법을 통해 새로운 영향력 행사의 기회를 얻었다.6
이러한 분업은 이후의 거래소를 형성하였다. 상공회의소가 무역 이익의 일반적 대변을 맡게 되자, 증권 업무는 별도로 조직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100주년사는 상공회의소에 관한 장 다음에 “Die Gründung des Effektenbörsenvereins Zürich”에 관한 장을 둔다. 취리히 증권거래소협회(Effektenbörsenverein Zürich)는 20세기 후반까지 이 도시의 증권 거래를 조직하게 될 단체이다. 이 순서는 취리히 금융 중심지의 기관들이 어떻게 서로에게서 자라났는지를 보여 준다. 상인 협회가 상공회의소를 낳았고, 상공회의소의 창설은 다시 증권 거래인들이 독자적인 협회를 결성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1850년대와 1860년대의 시장
거래소협회 설립 후 첫 20년 동안 그 모임에서 거래된 증권은 대부분 1852년 이후 설립된 철도회사와 신설 은행의 주식 및 채권이었다. 1853년 7월 1일 알프레트 에셔(Alfred Escher)의 주도 아래 스위스 북부철도(Schweizerische Nordbahn)와 취리히-보덴호 철도(Zürich-Bodenseebahn)의 합병으로 설립된 북동철도(Nordostbahn)는 취리히 최대의 발행인이자 지역 시장의 근간이었다.7 직물산업과 철도 건설에 자금을 대기 위해 1856년에 설립된 크레디탄슈탈트는 대규모 발행을 인수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배정할 자본과 연결망을 갖춘 은행을 취리히에 안겨 주었다.8 1857년 스위스 생명보험연금공사(Schweizerische Rentenanstalt)와 1863년 스위스 재보험회사(Schweizerische Rückversicherungsanstalt)가 설립된 뒤에는 보험주가 추가되었다. 같은 문헌의 표현에 따르면 이 두 회사는 취리히에 보험업을 확립하였다(E부 참조).
말리크 마즈부리(Malik Mazbouri)가 1850년 이후 시기에 관하여 집필한 스위스 역사사전의 자본시장 항목은 1850년부터 1870년까지를, 장차 대형 상업은행이 될 은행들을 비롯한 새로운 금융 중개기관이 등장하고 스위스의 주요 거래소들이 문을 연 시기로 본다. 그 가운데 제네바가 1855년으로 가장 앞섰다.9 제네바 거래소에 관해 문헌이 제시하는 연도는 조금씩 다르다. 엘리자베트 마이어한스(Elisabeth Meyerhans)가 집필한 스위스 역사사전의 거래소 항목은 제네바에서 1850년경 증권 거래가 시작되었고 1856년에는 공인된 거래소가 존재하였다고 기술한다.10 어느 쪽이든 거래소의 공식 조직화에서 제네바는 취리히보다 약 20년 앞서 있었으며, 이는 제네바 프라이빗 뱅크의 오랜 중요성과 파리 시장과의 연계를 반영한다. 제네바의 증권중개인(agents de change)들은 링 주위에서 거래하는 파리식 방식, 즉 코르베이유(corbeille)를 채택하였으며, 이 기법은 훗날 취리히에도 도입되었다.
주석
- HLS, Bernard Degen, “Unternehmerverbände”, 2016년 3월 24일 판, https://hls-dhs-dss.ch/articles/016459/2016-03-24/. ↩
- Swiss Finance Museum, “The history of trading”, https://www.finanzmuseum.ch/en/home/visit/guided-tours/history-of-trading.html. ↩
- Schmid, Meier, Die Geschichte der Zürcher Börse, 목차(“Das Zürcher Börsenkomitee und der Börsenverein von 1855”, “Auf der Suche nach geeigneten Lokalitäten”, “Das stille Begräbnis der Sensalengesetzgebung”, “Die Entwicklung der Börse, des Börsenvereins und des Kursblattes bis 1870” 각 장), https://urn.ub.unibe.ch/urn:ch:slsp:zbz:991132393929705501:ihv:pdf. ↩
- HLS, Degen, “Unternehmerverbände”, https://hls-dhs-dss.ch/articles/016459/2016-03-24/. 취리히에 있던 이 협회의 상설 사무국은 1882/1883년부터 연방 보조금을 받았으며, 이는 국가와 민간 단체 간 협력의 모델로서 이후 다른 단체로 확대되었다. ↩
- “Zürcher Handelskammer”, Wikipedia(독일어판), https://de.wikipedia.org/wiki/Z%C3%BCrcher_Handelskammer. 거래소 100주년사에는 “Die Gründung der Kaufmännischen Gesellschaft Zürich (Handelskammer) durch den Zürcher Börsenverein”에 관한 장이 있다. ↩
- HLS, Robert Piller, “Handelskammern”, 2016년 3월 24일 판, http://www.hls-dhs-dss.ch/textes/d/D13808.php. ↩
- “Schweizerische Nordostbahn”, Wikipedia(독일어판), https://de.wikipedia.org/wiki/Schweizerische_Nordostbahn. ↩
- HLS, Behrens, “Zürich (Gemeinde)”, http://www.hls-dhs-dss.ch/textes/d/D171.php. 스위스 역사사전의 이 항목은 취리히가 은행 중심지로 부상한 시점을 크레디탄슈탈트의 설립으로 본다. ↩
- HLS, Stefan Altorfer, Malik Mazbouri, “Kapitalmarkt”, 2010년 2월 18일 판, https://hls-dhs-dss.ch/de/articles/013913/2010-02-18/. 이 항목은 금융회사의 부상과 1907년 스위스 국립은행(SNB)의 개업이 국가 차원에서 스위스 자본시장의 통합을 촉진하였다고 덧붙인다. ↩
- HLS, Elisabeth Meyerhans, “Börsen”, 2004년 8월 19일 판, http://www.hls-dhs-dss.ch/textes/d/D13741.ph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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