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와 홀로코스트 시대 보험청구에 관한 국제위원회
은행 계좌를 둘러싼 논란은 보험 부문의 유사한 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의 E부는 취리히 보험회사들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였다. 중부 유럽의 많은 유대인 가족은 유럽 보험회사들에 생명보험을 들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광범위한 영업을 하던 스위스 회사들도 포함되었다. 전후 상속인들은 몰수되거나 분실된 보험증권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보험회사들은 보험계약이 실효되었다거나 몰수법에 따라 독일 국가에 보험금이 지급되었다는 이유로 청구를 거절하는 일이 잦았다.
은행 화해와 같은 달인 1998년 8월, 양해각서에 의해 홀로코스트 시대 보험청구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Holocaust Era Insurance Claims)가 설립되었으며, 전 미국 국무장관 Lawrence Eagleburger가 위원장을 맡았다. 원래의 합의에는 여섯 개의 유럽 보험회사, 즉 Allianz, AXA, Basler, Generali, Winterthur 및 Zurich가 서명하였다. Basler는 후에 탈퇴하였다.1 위원회는 양자 협정을 통해 결국 다수의 다른 회사들의 참여를 확보하였다. 2000년 청구 절차를 시작한 때부터 2007년 3월 종료할 때까지 위원회는 4만 8,263명의 청구인에게 약 3억 600만 달러를 배분하고, 추가로 1억 6,900만 달러를 인도적 기금에 배정하였다. 청구 절차는 증거 기준을 완화하였다. 청구인은 보험회사의 이름을 대거나 보험증권을 제시할 필요가 없었다. 약 3만 1,300명의 청구인이 각각 1,000달러의 일회성 인도적 지급을 받았다.
위원회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비판자들은 그 행정비용이 높고 지급액은 낮다고 보았다.2 보험회사들은 참여를 통해 미국 법원에서의 소송에 대해 어느 정도 보호를 받았다. 홀로코스트 시대의 보험증권 공개를 보험회사에 요구하는 캘리포니아주 법률을 무효로 한 2003년 연방대법원의 American Insurance Association v. Garamendi 판결은 사실상 청구를 위원회의 절차로 유도하였다. 취리히에 본사를 둔 두 보험회사에 위원회는 은행 화해에 비견되는 해결책을 제공하였다. 다만 그 규모는 더 작았고 법원이 승인한 집단소송도 없었다. 이 일화는 1990년대 취리히 금융 중심지의 평판 위험이 은행업과 보험업 모두에 걸쳐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주석
- 미국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Holocaust-Era Insurance Claims: Background and Issues for Congress, RL34348, https://www.everycrsreport.com/reports/RL34348.html. ↩
- Sidney Zabludoff, “The International Commission of Holocaust-Era Insurance Claims: Excellent Concept but Inept Implementation”, Jerusalem Center for Public Affairs, 2007년 3월 1일. ICHEIC 행정비용 약 1억 달러와, 미지급 홀로코스트 시대 생명보험 추정 가치의 약 3퍼센트만이 지급되었다는 점에 관하여, https://jcfa.org/article/the-international-commission-of-holocaust-era-insurance-claims-excellent-concept-but-inept-implement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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