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의 정치경제
추크의 조세정책은 결코 어느 한 정당이나 어느 한 정부의 정책이 아니었다. 전후 수십 년에 걸쳐 이 정책을 지탱한 것은 폭넓은 합의였다. 이 합의에는 가톨릭 보수파와 훗날의 기독교민주당,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유보적이기는 하였으나 좌파의 일부도 참여하였다. 이 합의는 세 가지 토대 위에 서 있었다.
첫째는 주민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익이었다. 기업들로부터 거두는 세수 덕분에 주(칸톤)와 기초자치단체(게마인데)는 모든 주민의 조세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여기에는 국제 기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평범한 피용자, 농민, 연금 생활자도 포함되었다. 아래에서 서술하는 기초자치단체 세율 승수의 하락은 이러한 이익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바르나 함의 유권자가 해마다 자신의 세금 고지서 금액이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면, 이러한 결과를 낳는 정책에 반대할 이유는 거의 없었다. 둘째는 1894년 헌법이 확립한 비례대표 정치제도였다. 비례대표제는 모든 주요 정치 세력에게 주 의회에서, 그리고 협치(concordance)의 관행을 통해 주 정부에서 자리를 부여하였다. 조세정책의 비판자들도 대표되었고 그들의 주장도 경청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정책은 폐기되지 않은 채 주변부에서 조정되었다. 도시와 암트(Amt)의 옛 연합이 길러 내고 비례대표제가 현대화한 합의의 문화가 이 정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다.
셋째는 국민투표였다. 조세법의 주요 개정은 모두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었고, 그 가운데 여러 건이 실제로 주민의 표결에 부쳐졌다. 유권자들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 정책을 승인하였고, 이로써 이 정책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주 밖의 비판자들은 이러한 정당성을 반박하기 어려웠다. 조세정책이 좁은 엘리트층에 봉사한다는 주장은 거듭된 국민 다수의 지지라는 증거 앞에서 유지되기 어려웠다.
합의에는 대가가 따랐다. 이익을 나누어 받지 못한 사람들, 무엇보다 주가 매력적인 곳이 되면서 오르는 임대료에 직면한 무주택 주민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 좁은 영토에 국제 기업과 부유한 주민이 집중되면서 토지와 주택 가격이 올랐고, 그 결과 주의 성공은 주민 일부에게는 고난의 원천이 되었다. 제K부에서 주택 부족이라는 제목 아래 검토하는 이 긴장은, 외국 자금의 흐름을 통제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오래된 분배 갈등이 현대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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