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베티아 공화국의 조세 실험
헬베티아 공화국은 근대 국가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공화국은 속령과 봉건적 관계를 폐지했다. 통일된 민법과 형법, 소금·우편·화폐 주조에 대한 국가 독점, 교육 개혁을 도입했다. 또한 재산, 상속, 사치품에 대한 세금을 포함하는 근대적 조세 제도를 도입했다.1
옛 추크주(칸톤)의 주민들에게 헬베티아의 조세 제도는 새로운 것이자 부담이었다. 옛 주는 근대적 의미의 정기적인 직접세를 알지 못했다. 그 공공 수입은 외국 연금, 도시의 독점과 시장 사용료, 공유 재산에서 나오는 수입, 그리고 비정기적인 부과금에서 나왔다. 헬베티아 공화국은 이 조각보 같은 체계를 모든 시민의 재산과 소득에 부과되고 중앙 행정기관이 징수하는 일반 조세로 대체했다. 동시에 1799년 일부가 스위스 땅에서 벌어진 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은 중부 스위스에 징발, 숙영, 파괴를 가져왔다.2 헬베티아 실험의 실패는 스위스의 헌법적 상상력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중부 스위스의 주들은 중앙집권적 과세를 외국의 점령, 자치권의 상실, 무력으로 강요된 체제와 연결지었다. 1848년 연방 국가가 창설되었을 때 직접세는 주에 남았고, 연방은 관세와 우편 수입으로 재원을 마련했다. 20세기에 조세 경쟁을 가능하게 한 주의 과세 주권은 부분적으로 헬베티아 경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따라서 추크 재정 정책의 역사적 뿌리는 역설적이게도 근대 국가에 대한 옛 가톨릭 주들의 저항에 있다.
주석
- 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HLS), “Helvetische Republik”: 속령과 봉건적 관계의 폐지; 근대적 조세 제도(재산세, 상속세, 사치세) 도입; 통일된 민법과 형법; 소금, 우편, 화폐 주조에 대한 국가 독점; 교육 분야의 시도. ↩
- HLS, “Helvetische Republik”: 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1799) 동안의 정치적 불안정과 군사적 충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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