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이전의 성장과 번영
주(칸톤)의 산업화는 인구 증가와 소득 상승으로 이어졌다. 추크 시의 인구는 1888년 5,120명에서 1900년 6,508명, 1910년 8,096명으로 늘었다.1 1905년 추크 시 취업 인구의 58%가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였다.2 1890년부터 1910년 사이 추크주의 1인당 소득은 40% 증가하여 1,288프랑이 되었다. 이는 같은 기간 44% 증가한 스위스 평균 1,162프랑을 웃도는 수준이었다.3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추크는 이미 스위스 기준으로 보아도 부유한 주였다. 그 번영은 산업에 기반을 두었다. 바르와 에게리의 면방적, 참의 제지, 참의 연유, 그리고 추크 시의 금속제품과 전기기기가 그것이었다. 추크의 기업들은 국내외 시장을 상대하였고, 그중 하나는 합병을 거쳐 훗날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가 될 기업의 일부가 되었다. 주에는 주립은행, 근대적 공공설비, 취리히·루체른·고트하르트로 이어지는 철도 연결망, 그리고 다른 주와 이탈리아에서 온 많은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력이 있었다. 훗날 사업 입지의 기반은 갖추어져 있었으나, 그 결정적 특징인 저세율 정책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주석
- HLS, “Zug (Gemeinde)”: 인구 1888년 5,120명, 1900년 6,508명, 1910년 8,096명. HLS 연표에는 1897년 6,508명, 1905년 8,096명으로도 기재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1900년과 1910년의 인구조사 수치를 사용한다. ↩
- HLS, “Zug (Gemeinde)”: 1905년 취업 인구의 58%가 공업 및 상업 부문에 종사. ↩
- Zug in der Welt, “Zugs zweite Industrialisierung 1880–1913”: 스위스의 1인당 소득은 1890년부터 1910년 사이 44% 증가하여 1,162프랑이 됨; 같은 기간 추크의 1인당 소득은 40% 증가하여 1,288프랑이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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