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부르크에서 합스부르크로
추크라는 이름은 1092년 “Ziuge”라는 형태로 처음 등장한다.1 도시는 1200년 무렵 또는 그 이후에 건설되었다. 건설자가 누구인지는 논란이 있으나, 키부르크 백작 가문이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이 도시가 훗날 키부르크 가문 유산의 일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2 추크가 도시로 처음 문헌에 기록된 것은 1242년이다. 1273년, 같은 해에 로마인의 왕이 된 합스부르크의 루돌프가 키부르크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산을 취득하였고, 이와 함께 추크시도 손에 넣었다.
합스부르크 지배 아래에서 이 지역은 하나의 행정 단위로 조직되었다. 1303년부터 1307년 사이에 작성된 합스부르크 토지대장(Habsburger Urbar)은 추크, 애게리, 바르의 세 구역으로 이루어진 “추크 관구(Amt Zug)”를 기록하였다.3 도시, 호수 계곡, 평야로 이루어진 이 3부 구성의 단위는 훗날 주(칸톤)의 헌정 구조를 예고하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시 인장은 1319년의 것이다.4
추크주의 경제사에서 합스부르크 시기가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 시기가 남긴 것 때문이다. 시장과 성벽, 그리고 소수의 시민 계층을 갖춘 도시가 남았고, 그 주변에는 협동조합적 공동체로 조직된 자유농과 예속농의 농촌이 남았다. 도시는 이 지역의 자연스러운 교역 중심지였다. 농촌 공동체들은 목초지, 산림, 수리권을 공동으로 관리하였다. 두 제도는 모두 합스부르크 지배가 끝난 뒤에도 살아남았으며, 오늘날에도 추크주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석
- 스위스 역사 사전(HLS), “Zug (Gemeinde)”, 중세 항목: 1092년 “Ziuge”로 처음 언급됨. ↩
- HLS, “Zug (Gemeinde)”: 약 1200년 이후 도시 건설, 건설자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음; 1242년 도시로 처음 언급됨; 1273년 합스부르크의 루돌프가 키부르크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산을 취득함. HLS, “Zug (Kanton)”: 키부르크 백작 가문과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 아래에서 영역의 중심지로서의 도시. ↩
- HLS, “Zug (Kanton)”, 합스부르크 시기 항목: 1303–1307년의 합스부르크 토지대장(Habsburger Urbar)은 추크 관구(Amt Zug)를 추크, 애게리, 바르로 이루어진 단위로 기술한다. ↩
- HLS, “Zug (Gemeinde)”: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시 인장은 1319년의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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