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의 마녀재판
대관구에서 규문주의 제도가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은 마녀재판이었다. 레벤티나, 블레니오, 리비에라, 그리고 (당시 그라우뷘덴에 속하였던) 메솔치나에서는 다른 알프스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16세기 말과 17세기에 수십 명, 대부분 여성이 마술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그중 다수가 처형되었다.1 이 재판들은 교회 재판권과 세속 재판권을 결합한 것이었고 고문을 동반하여 진행되었다. 재정적 동기만으로 이를 설명할 수는 없으나, 유죄판결을 받은 자의 재산 몰수와 절차 수수료는 관여한 관리들에게 재판의 지속에 대한 재정적 이해관계를 부여하였다. 박해는 17세기 말에 쇠퇴하였는데, 호수 지역 대관구에서는 계곡 지역보다 일찍 쇠퇴하였다.
예측할 수 없는 사법의 대가
이 제도가 대관구의 경제생활에 미친 결과는 상당하였다. 경미한 위반으로 벌금을 물 수 있고, 추방으로 재산을 잃을 수 있으며, 민사사건의 결과가 교체되는 대관의 호의에 달려 있는 상인이나 지주는 사전에 계산할 수 없는 법적 위험에 직면하였다. 공동체들은 보호 전략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지배 주(칸톤)들의 유력 가문과 관계를 돈독히 하였고, landfogto와 sindacatori에게 관례적인 선물을 바쳤으며, 중재와 공증 화해를 통해 분쟁을 사적으로 해결하였고, 서면으로 확인된 특권과 면제를 구하였다.2 이러한 전략은 법적 신중함과 사적 질서 형성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즉 법원 밖에서 분쟁을 해결하고, 문서, 가족 구조, 인적 관계망을 통해 재산을 보전하려는 성향이다.
티치노 사적 실무의 현대적 관행을 대관구 시대로 곧바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할 것이다. 루가노에서 공증인, 수탁자, 사적 화해, 신중한 가족 차원의 장치가 갖는 중요성에는 여러 원인이 있으며, 그 대부분은 19세기와 20세기에 있다(제D.II장 및 제E.III장). 그럼에도 근세의 경험은 그 배경의 일부를 이룬다. 공적 사법 운영이 비용이 많이 들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3세기에 걸쳐 체득한 사회는 그에 대한 사적 대체수단을 발전시키고, 주(칸톤)가 창설된 뒤에는 법에 구속되는 사법 운영을 높이 평가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주석
- Ceschi (ed.), Storia della Svizzera italiana dal Cinquecento al Settecento(앞의 글). 개별 계곡에서의 재판 및 처형 건수는 문헌상 다툼이 있어 여기서는 제시하지 않는다. ↩
- Schnyder, Famiglie e potere(앞의 글); Ceschi, Nel labirinto delle valli(앞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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