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넘은 것들: 곡물, 소금, 쌀, 가축, 치즈, 포도주, 직물
롬바르디아와 동맹 사이를 오간 화물은 두 부류로 나뉜다. 원거리 통과 화물은 라인강과 밀라노 사이, 또는 그 너머까지 노선 전체를 이동하였다. 직물, 비단, 향신료, 염료, 금속 제품, 무기가 이에 속한다. 지역 화물은 롬바르디아 평원, 남쪽 계곡들, 스위스 중부의 목축 주(칸톤)들 사이에서 더 짧은 거리를 이동하였다. 곡물, 소금, 쌀, 포도주, 가축, 치즈, 버터, 가죽이 그것이다. 원거리 교역은 통행세 수입을 낳았고 고트하르트를 유럽의 노선으로 만들었다. 지역 교역은 알프스 주민을 먹여 살렸고 동맹 측과 밀라노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규정하였다. 산악 주들은 롬바르디아의 곡물과 소금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1
곡물
내륙 주들과 알프스 이남의 계곡들은 자급할 만큼의 곡물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중세 후기부터 스위스 중부의 목축 경제는 소와 유제품에 특화하였고, 곡물은 북쪽으로는 알자스와 남부 독일에서, 남쪽으로는 롬바르디아에서 사들였다.2 우리와 남쪽 계곡들에게는 롬바르디아가 더 가까운 공급지였다. 곡물은 바레세, 코모, 루이노, 아로나의 시장에서 매입되어 체네리 고개를 넘고 레벤티나를 거슬러 북쪽으로 운반되었다. 밀라노 공국은 다른 이탈리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허가(tratte)를 통하여 곡물 수출을 규제하였고, 흉작기에는 수출을 전면 금지하였다. 따라서 롬바르디아 곡물에 대한 접근은 정치적 문제였으며, 동맹 측과 밀라노 사이의 협약은 공국에 동맹 측의 식량, 특히 포강 유역 곡물의 공급을 확보할 의무를 지웠다.3
밀라노는 이러한 의존을 지렛대로 삼았다. 동맹 측과의 관계가 긴장되면 총독들은 tratta를 닫았고, 몇 주 안에 알트도르프와 루체른의 빵값이 올랐다. 동맹 측은 고개를 봉쇄하거나 가축 수출을 중단하거나 용병을 보내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것으로 응수하였다. 스페인 왕실에 병력을 제공한 내륙 주들이 1587년의 스페인 동맹과 그 갱신을 그토록 중시한 이유도 곡물 문제로 설명된다. 이 동맹은 연금과 곡물 공급의 보장을 가져다주었다.4 대관령에서는 곡물 공급이 기초자치단체(게마인데)와 landfogto(대관)의 책임이었으며, 대관은 결핍기에 대관령 밖으로의 수출을 금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금지는 대관령과 롬바르디아 사이에 가격 차를 만들었고, 어느 쪽이 부족한지에 따라 양방향의 밀수를 불렀다.
소금
소금은 두 번째 전략 물자였다. 소금은 고기와 치즈의 보존과 가축 사료에 없어서는 안 되었다. 알프스의 목축 경제는 많은 양을 소비하였다. 고트하르트 노선에 있는 지역 가운데 소금을 생산하는 곳은 없었다. 스위스 중부는 티롤의 할과 바이에른의 라이헨할 제염소에서 소금을 얻었다. 남쪽 계곡들에 이른 소금은 지중해의 바다 소금이었다. 그 상당 부분은 베네치아가 자국의 석호, 이스트리아, 풀리아, 시칠리아, 이비사에서 들여와 거래한 것이었으며, 밀라노 공국에서 소금 판매는 국가 독점(gabella del sale)이었다.5 소금은 국가의 주요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밀라노 공국의 독점 가격은 높았다. 그래서 밀라노와의 조약은 동맹 측과 대관령이 자가 소비를 위하여 고정된 양의 소금을 고정된 가격으로 살 수 있도록 하면서, 그 소금을 밀라노 영토에서 재판매하는 것은 금지하였다.
소금 조항은 끊임없는 마찰의 원천이 되었다. 루가노나 멘드리시오에서 조약에 따라 싸게 산 소금은 몇 킬로미터 떨어진 롬바르디아에서 독점 가격에 팔 수 있었다. 밀라노의 소금 청부인들은 조약 소금이 공국으로 밀반입되는 데 대하여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하였다.6 이러한 양상은 밀라노가 국가 독점을 도입하거나 강화할 때마다 되풀이되었으며, 그 가장 두드러진 예가 17세기와 18세기의 담배였다.
주석
- 스위스 역사사전(HLS), “Agrarmarkt” 항목(Martin Illi, Alfred Zangger, Peter Moser, 2009년 4월 9일 판), https://hls-dhs-dss.ch/de/articles/013926/2009-04-09/: “Rinder, Pferde, Milchprodukte, Trockenfleisch und Häute wurden vor allem in norditalienische Städte exportiert” 및 “Die Südschweiz bezog Reis und Getreide aus Oberitalien”. HLS, “Gotthardpass” 항목(앞의 글). 소와 치즈를 곡물, 포도주, 쌀과 교환한 것에 관하여. 원거리 통과 화물의 목록: Schulte(앞의 글), 제1권. ↩
- HLS, “Agrarmarkt” 항목(앞의 글): “Kornimporte ins Gebiet der heutigen Schweiz erfolgten hauptsächlich aus dem Elsass und aus Süddeutschland über Basel, Schaffhausen, Konstanz, Zürich und Luzern”. 또한 13세기와 14세기부터 알프스 및 알프스 전면 지역에서 “früh vor allem in der Innerschweiz” 발달한 시장 지향적 축산 경제에 관하여. HLS, “Gotthardpass” 항목(앞의 글). 중세 후기부터 소와 치즈를 곡물, 포도주, 쌀과 교환한 것에 관하여. ↩
- HLS, “Mailänder Kapitulate” 항목(앞의 글): 밀라노는 “für deren ausreichende Versorgung mit Lebensmitteln, vor allem Getreide aus der Poebene, [...] ebenso für die Zufuhr von Salz”를 보장하여야 하였다. 밀라노의 수출 허가(tratte). ↩
- HLS, “Spagna” 항목(Rudolf Bolzern, 이탈리아어 번역 Livia Taddei), https://hls-dhs-dss.ch/it/articles/003372/.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 루체른, 추크, 프리부르와 맺은 1587년 동맹, 그 연금, 그리고 이탈리아 대관령에 대한 소금과 곡물 공급에 관하여. 제B.III장 참조. ↩
- HLS, “Sale” 항목(Jean-François Bergier, 이탈리아어 번역 Chiara Orelli Vassere, 2020년 3월 12일 판), https://hls-dhs-dss.ch/it/articles/014041/2020-03-12/. 이 항목에 따르면 티롤(할)과 바이에른(라이헨할)의 소금이 스위스 동부와 중부 및 그라우뷘덴에 공급되었고, 베네치아가 “dalla sua laguna, dall’Istria, dalla Puglia, dalla Sicilia” 얻은 소금이 티치노에 이르렀다. 밀라노의 소금 독점(gabella del sale). ↩
- Ceschi (ed.), Storia della Svizzera italiana dal Cinquecento al Settecento(앞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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