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콘티와 스포르차: 밀라노 국가 안의 영역
시뇨리아에서 공국으로
비스콘티 가문은 14세기에 북이탈리아 최대의 영역 국가를 건설하였다. 밀라노에 대한 그들의 영주권은 벤첼 왕이 1395년 5월 11일자 특허장으로 10만 플로린을 대가로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에게 공작 칭호를 수여함으로써 세습 공국으로 전환되었다. 성대한 서임식은 1395년 9월 5일 산탐브로조 성당에서 거행되었다.1 공국은 전성기에 알프스에서 토스카나까지 뻗어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위협하였다. 티치노 지역은 이 국가의 작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일부였다. 이 지역은 밀라노로 들어가는 북쪽 접근로와, 밀라노 상인들이 독일과 라인 강에 이르기 위해 이용하던 길을 장악하였다. 또한 수도에 목재, 숯, 석재, 소와 유제품을 공급하였다.2
1402년 잔 갈레아초의 죽음은 공국을 위기에 빠뜨렸다. 그의 아들들은 미성년자였고, 용병대장과 지역 영주들은 차지할 수 있는 것을 차지하였으며, 도시들의 옛 파벌이 되살아났다. 티치노 지역에서는 루스카 가문이 코모와 루가노에서 권력을 되찾았고, 중부 스위스의 동맹 세력은 밀라노의 약화를 틈타 레벤티나에, 그리고 곧이어 벨린초나에 자리를 잡았다(다음 절 참조). 질서는 1412년 공작이 되어 이후 수년간 아버지의 유산을 재정복한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에 의해서야 회복되었다.3 그의 방법은 군사력과 협상을 결합한 것이었다. 도시를 장악한 지역 가문들은 공작의 주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이를 공작의 봉토로서 보유하도록 허용되었다. 이것이 15세기 이 지역의 복잡한 봉건 지도를 설명해 준다.
봉토와 봉신
필리포 마리아와 그 후계자인 스포르차 가문 치하에서 이 지역의 상당 부분은 귀족 가문들에게 봉토로 수여되었다. 루스카 가문은 오랜 기간 백작으로서 루가노를, 후에는 로카르노를 보유하였다. 남이탈리아 출신으로 밀라노에 봉사하던 산세베리노 가문은 15세기 중반 수십 년간 루가노와 인접 구역들을 보유하였다.4 다른 구역들은 공작의 관리들이 직접 관리하였다. 이 구별은 주민들에게 중요하였다. 봉신은 그렇지 않았다면 공작에게 돌아갔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징수하고, 지역 재판관을 임명하며, 제1심의 민사 및 형사 재판권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상소, 가장 중대한 범죄 및 국가 사안은 밀라노의 공작과 그 평의회에 유보되었다. 필리포 마리아는 1441년 11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De maiori magistratu 칙령으로 봉건 podestà의 권한을 축소하고 도시 행정관들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다.5
봉토는 근대적 의미의 사유재산이 아니었다. 공작은 불충을 이유로 봉토를 회수할 수 있었으며, 가계가 단절되거나 봉신이 적의 편에 서면 정기적으로 이를 되찾았다. 그럼에도 봉토는 상속 가능하였고 담보로 제공될 수 있었다. 봉건 가문들은 봉토를 그것이 창출하는 수입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자산으로 취급하였다. 시장, 호수 교통 및 통행세를 갖춘 루가노 같은 봉토는 소액의 현물 공과가 수입의 전부인 알프스 계곡보다 훨씬 큰 가치가 있었다. 따라서 봉토 수여는 금융 거래이기도 하였으며, 그중 몇몇은 봉신들이 공작의 금고에 제공한 대출과 연결되어 있었다.6
주석
- Treccani, Dizionario Biografico degli Italiani, “Gian Galeazzo Visconti, duca di Milano” 항목, https://www.treccani.it/enciclopedia/gian-galeazzo-visconti-duca-di-milano_(Dizionario-Biografico)/ (1395년 5월 11일 특허장, 1395년 9월 5일 산탐브로조에서의 대관식, 10만 플로린의 대가). ↩
- 스위스 역사사전(DSS), “Milano (ducato)” 항목, https://hls-dhs-dss.ch/it/articles/006632/, 티치노 지역의 전략적 역할과 밀라노에 대한 유제품, 목재, 석재 및 가축 공급에 관하여. ↩
- Treccani, Dizionario Biografico degli Italiani, “Filippo Maria Visconti, duca di Milano” 항목, https://www.treccani.it/enciclopedia/filippo-maria-visconti-duca-di-milano_(Dizionario-Biografico)/. ↩
- DSS, “Rusca” 항목(앞의 주), 1439년 로카르노 봉토에 관하여; DSS, “Sanseverino, Aloisio” 항목, https://hls-dhs-dss.ch/fr/articles/015429/2009-11-30/, 1434년 및 1438년의 수여(루가노와 그 계곡, 멘드리시오 및 발레르나 피에베)에 관하여; DSS, “Lugano (comune)” 항목(앞의 주). ↩
- Gigliola Soldi Rondinini, “Filippo Maria Visconti, duca di Milano”, in Dizionario Biografico degli Italiani (Roma: Istituto della Enciclopedia Italiana, 1997), https://www.treccani.it/enciclopedia/filippo-maria-visconti-duca-di-milano_(Dizionario-Biografico)/, 봉건 서임 제도와 1441년 11월의 De maiori magistratu 칙령에 관하여; Federica Cengarle, Feudi e feudatari del duca Filippo Maria Visconti. Repertorio (Milano: Unicopli, 2007). ↩
- Cengarle(앞의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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