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랄트 가문: 외과의에서 비단 제조업자로
Muralt 가문은 Orelli 가문보다 늦게 상업에 진출하였다. 법학 박사이자 전직 공작령 podestà였던 Martino Muralto는 로카르노 개혁파 공동체를 이끌었고, 1555년 가족과 함께 이주하였다. 외과 의사였던 그의 아들 Johannes는 가문의 취리히 분가를 세웠다. 또 다른 아들 Hans Ludwig(1546–1606)는 외과 의사 수련을 받고 1567년 Maria von Mülinen과 혼인하였으며, 1570년 베른 시민권을 취득하여 베른 분가를 세웠다.1 두 세대 동안 취리히의 Muralt 가문은 주로 내과·외과 의사였다. 그들의 상업 진출은 이주자 Giovanni Muralto의 손자인 Johannes Muralt(1577–1645)에 이르러 이루어졌다.
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에 따르면 Johannes Muralt는 취리히의 모든 로카르노 난민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주로 롬바르디아와 직물 무역을 하였다. 그는 1606년부터 1611년 사이에 가문에서 처음으로 제조업에 뛰어들어 견직물 회사 Muralt an der Sihl을 세웠다. 그는 롬바르디아 출신 노동자들과 함께 취리히에서 샤페(부산물 견사로 자은 방적견사)와 플로스 실크를 생산하였으며, 1636년 이후 형제 Johann Anton과 함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2 이 회사는 시의 주요 견직물 상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 역사는 취리히의 역사가 Hans Conrad Peyer가 단행본 Die Seidenfirma Muralt an der Sihl(1966)에서 재구성하였으며, 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는 이 회사에 관한 출처로 이 책을 인용한다.3
무역, 친족 그리고 롬바르디아와의 연결
로카르노 사람들의 상업 전략은 롬바르디아와의 연결에 기반하였다. 1920년대에 Paul Keller는 기존 문헌을 정리하면서 이탈리아계 또는 로카르노계 상인 가문들의 한 무리를 거명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Orelli, Pestalozzi, Muralt 가문이 있었으며, 이들은 베르가모, 밀라노, 베로나에 대리인을 두고 있었다.4 이 대리인들은 생사와 견사를 사들이고, 신용과 지급을 주선하며, 가격과 수확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탈리아 시장에서 취리히 상품을 팔았다. 이들은 흔히 가문이나 동맹 가문의 구성원이었는데, 이는 국경을 넘는 계약의 집행이 어려웠던 시대에 사기의 위험을 줄여 주었다.
이탈리아와의 연결에는 법적 측면도 있었다. 로카르노 사람들은 그들을 추방한 가톨릭 주(칸톤)들을 포함한 12개 주의 공동 통치 아래 남아 있던 지역에서 온 프로테스탄트 망명자였다. 롬바르디아에 있는 그들의 상업 대리인들은 스페인이 통치하는 밀라노 공국에서 활동하였는데, 그곳에서는 종교재판소가 활동 중이었고 프로테스탄트는 공개적으로 신앙을 실천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무역에는 신중함과 종파 경계 양쪽의 믿을 만한 중개인이 필요하였다.5 종파적·정치적 경계를 넘어 상업 관계를 유지하는 역량은 훗날 취리히가 북유럽과 남유럽 사이의 중개자로서 지위를 갖게 되는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주석
- Bonjour, “Muralt, von”(앞의 문헌); Hans Ludwig와 베른 분가에 관하여 Wikipedia, “Muralto family”(앞의 문헌). ↩
- Lassner, “Muralt, Johannes”(앞의 문헌): “Comme tous les Locarnais réfugiés à Zurich, M. commença par faire surtout du commerce de textiles avec la Lombardie. Il fut le premier de sa famille à se lancer dans la fabrication (1606-1611) et fonda la soierie Muralt an der Sihl.” ↩
- Hans Conrad Peyer, Die Seidenfirma Muralt an der Sihl (Zürich 1966). Martin Lassner, “Muralt, Johannes”,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Suisse(DHS)(이탈리아어판)의 참고문헌, https://hls-dhs-dss.ch/it/articles/029398/ (2026년 10월 5일 확인). ↩
- Keller, “Der Einfluss der Hugenotten”(앞의 문헌). 베르가모, 밀라노, 베로나에 대리인을 둔 Orelli, Gosswiller, Römer, Holtzhalb, Pestalozza, Muralto를 거명한다. ↩
- 두 가문의 이탈리아 거래처에 관하여 Schulthess, Die von Orelli(앞의 문헌) 및 Peyer, Die Seidenfirma Muralt an der Sihl(앞의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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