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의 결정
수도를 둘러싼 경쟁은 거듭 폭력 사태로 번졌다. 1870년 주도(州都) 선정을 둘러싼 분쟁은 연방이 질서 회복을 위하여 티치노에 개입한 계기 중 하나였다.1 1875년 집권한 보수파 다수는 비밀투표, 국민발안과 국민투표, 철도 건설과 함께 영구적인 수도 확정을 개혁 프로그램의 일부로 삼았다. 『스위스 역사 사전』(DSS)의 보수당 지도자 조아키모 레스피니 전기는 벨린초나를 영구 수도로 확정한 것을 그 정부의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2
1878년 2월 10일 주(칸톤) 의회는 63 대 35로 헌법 개정안을 가결하였고, 1878년 3월 10일 유권자들은 13,819표 대 6,851표로 이를 승인하였다. 개정된 조문은 “Il Gran Consiglio ed il Consiglio di Stato risiederanno stabilmente nella città di Bellinzona”(주의회와 주정부는 벨린초나시에 상설적으로 소재한다)라고 규정하였다. 벨린초나시는 자체 비용으로 정부 청사(Palazzo governativo)를 개조하고 유지할 의무를 지었다. 다른 두 도시는 제도적 보상을 받았다. 루가노는 주 최고법원인 항소법원의 소재지가 되었고, 로카르노는 주 북부를 관할하는 법원을 얻었다. 정부는 로카르노의 마지막 6년 임기가 끝난 뒤인 1881년 3월 14일 영구 소재지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3
흔한 오해. 루가노는 특히 해외에서 티치노의 수도로 흔히 묘사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수도는 벨린초나이며, 1997년 12월 14일 주 헌법 제5조는 벨린초나를 주의회와 주정부의 소재지로 명시하고 있다.4 루가노는 가장 큰 도시이자 경제·금융 중심지이며, 1881년부터 주 항소법원의 소재지이다. 정치적 수도와 금융 중심지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스위스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스위스에서는 베른이 연방 도시이고 취리히가 금융 수도이다. 티치노에서 이러한 분리는 1878년의 타협과 그에 앞선 순환 제도의 결과이다.
다중심적 주와 그 금융 중심지
1878년의 해결은 티치노의 공공 및 민간 기관의 지리적 배치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주정부, 주의회, 대부분의 주 부처는 벨린초나에 있으며, 벨린초나는 2004년 제J.II장에서 설명하는 연방형사법원의 소재지도 되었다. 항소법원은 루가노에 있고, 루가노에는 대부분의 은행, 신탁회사, 법률사무소와 스위스 이탈리아어권 대학교(Università della Svizzera italiana)가 자리 잡고 있다. 실무가의 입장에서 그 결과는, 은행이나 신탁회사에 중요한 정치 당국과 사법 당국이 여러 도시에 분산되어 있는 주이다. 19세기의 순환 제도는 기능의 분담으로 바뀌었다.
주석
- Hans-Urs Wili, “Interventions fédérales”, DHS, 2018년 2월 21일 판, https://hls-dhs-dss.ch/fr/articles/026427/2018-02-21/. ↩
- Christian Luchessa, “Respini, Gioachimo”, DHS, 2024년 11월 11일 판, https://hls-dhs-dss.ch/fr/articles/003535/2024-11-11/. ↩
- Mondada, “Bellinzona”(앞의 글). ↩
- Costituzione della Repubblica e Cantone Ticino(1997년 12월 14일), RL 101.000, https://www.lexfind.ch/tolv/208981/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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