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노주의 반파시스트 망명
Libera Stampa와 최초의 망명자들
C.II장에서 리소르지멘토 시기에 관하여 서술한 정치적 망명의 전통은 1922년 이후 되살아났다. 스위스 역사사전은 파시스트의 권력 장악 이후 수많은 이탈리아 반파시스트가 스위스로 피신하였다고 기록한다.1 티치노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첫 피난처였다. 언어가 같았고, 밀라노에서 가까웠으며, 그들에게 공감하는 사회주의 및 급진주의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력의 중심은 1913년 Guglielmo Canevascini가 창간한 일간지 Libera Stampa였다. Mauro Cerutti는 이 신문을 유럽에서 발행된 최초의 이탈리아어 반파시스트 일간지라고 부른다.2 루가노에 있던 이 신문의 편집국은 망명자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해외 반파시스트 언론의 정보원이 되었고, 이탈리아 정치경찰의 표적이 되었다.
이 신문에 글을 쓴 최초의 저명한 망명자는 이탈리아 의회의 사회당 의원을 지낸 Angelo Tonello였다. 그는 1925년 연방평의회가 정치 활동을 삼가라고 경고할 때까지 Libera Stampa에 반파시스트 기사를 게재하였다.3 이 경고는 망명자들의 법적 지위를 잘 보여 준다. 스위스의 망명 실무는 외국인 난민이 본국과 스위스의 관계를 해칠 수 있는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들을 용인하였다. 연방 당국은 1874년 「연방헌법」 제70조에 따라 국가의 대내적 또는 대외적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외국인을 추방할 수 있었다.4 따라서 망명자의 모든 기사, 회합, 여행은 망명자 자신에게나 그를 보호하는 사람들에게나 위험을 계산해야 하는 일이었다.
루가노의 Pacciardi 거점, 1927–1933년
Tonello의 자리는 Randolfo Pacciardi가 이어받았다. 그는 1899년 그로세토 지방에서 태어난 언론인이자 이탈리아 공화당의 활동가로, 1926년 스위스로 망명하였다. Pacciardi는 1929년 Carlo Rosselli와 다른 망명자들이 프랑스에서 창설한 운동인 Giustizia e Libertà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5 그는 루가노에서 최근의 한 연구가 “루가노의 Pacciardi 반파시스트 거점(1927–1933)”이라 부르는 조직을 운영하였다. 이 거점은 이탈리아·스위스 국경을 넘나드는 모험적인 왕래와, 무솔리니에 대한 음모를 포함한 정권 반대 비밀 작전을 수행하였다.6 이탈리아 경찰은 이러한 활동을 면밀히 추적하였다. 파시스트 시기 스위스·이탈리아 관계에 관한 Cerutti의 연구는 이탈리아 경찰과 반파시스트 이민자들에 관하여 한 장을 할애하여, 스위스 내 밀고자들과 경찰청장 Arturo Bocchini의 역할을 다룬다.7
이탈리아 국가는 감시에만 그치지 않았다. 1928년, 무솔리니의 측근이었으나 사회당 의원 Giacomo Matteotti 살해 사건 이후 그와 결별한 Cesare Rossi가 캄피오네 인근에서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되었다.8 루가노 호수 동쪽 기슭에 있으며 스위스 영토에 둘러싸인 이탈리아의 월경지 캄피오네디탈리아는 루가노에서 바라다보이는 이탈리아 땅이었다.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Rossi는 친구이자 Corriere italiano의 전 국장 Filippo Filippelli의 꾐에 넘어가 스위스 국경 부근의 회합 장소로 나왔는데, Filippelli는 Rossi의 편지 한 통을 경찰에 넘긴 상태였다. 회합 장소에서 파시스트 경찰은 그를 붙잡아 강제로 이탈리아 영토로 데려갔다.9 이 사건은 국경이 스위스 쪽에 머무는 사람에게만 보호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는 또한 스위스 당국의 불안을 설명해 준다. 스위스 당국은 이탈리아의 스위스 주권 침해와, 스위스 영토가 이탈리아에 대한 공격에 이용되는 것을 모두 우려하였다.
주석
- Walter Kälin, “Asyl”, 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 (HLS) 수록, 2002년 11월 26일 판, https://hls-dhs-dss.ch/de/articles/010374/: “Nach 1922 flohen zahlreiche italienische Antifaschisten in die Schweiz.” ↩
- Mauro Cerutti, “Antifaschismus”, HLS 수록, 2016년 6월 27일 판, https://hls-dhs-dss.ch/de/articles/027835/2016-06-27/: “die erste antifaschistische Tageszeitung in italienischer Sprache, die in Europa erschien”. ↩
- Cerutti, “Antifaschismus” (앞의 글). ↩
- Kälin, “Asyl” (앞의 글), 1848년 「연방헌법」 제57조 및 1874년 「연방헌법」 제70조에 관하여. 이 조항들은 연방에 “Fremde, welche die innere und äussere Sicherheit der Eidgenossenschaft gefährden”을 추방할 권리를 부여하였다. ↩
- Cerutti, “Antifaschismus” (앞의 글); Treccani, Enciclopedia on line, “Pacciardi, Randolfo”, https://www.treccani.it/enciclopedia/randolfo-pacciardi/: “Uomo politico (Giuncarico, Grosseto, 1899 - Roma 1991). Giornalista, militante nel Partito repubblicano”; “Esule in Svizzera (1926), ne fu poi espulso (1933)”. ↩
- Una bomba per il duce. La centrale antifascista di Pacciardi a Lugano (1927–1933), ISBN 978-88-498-0706-6, 출판사 소개문은 https://prestatest.bazzacco.net/libri/460447-bomba-per-il-duce-la-centrale-antifascista-di-pacciardi-a-lugano-1927-1933-una--9788849807066.html 에 재수록(“avventurosi andirivieni sulla frontiera italo-svizzera”). 참조한 페이지에는 저자와 출판사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
- Cerutti, Fra Roma e Berna (앞의 책), 목차, 제6장(“La polizia italiana e gli emigrati antifascisti”). ↩
- Cerutti, “L'Italia fascista e la Svizzera” (앞의 글). ↩
- Mauro Canali, “Rossi, Cesare”, Dizionario Biografico degli Italiani, 제88권 (Rome: Istituto della Enciclopedia Italiana, 2017), https://www.treccani.it/enciclopedia/cesare-rossi_(Dizionario-Biografico)/: Filippelli는 “consegnò la lettera alla polizia e nell'agosto 1928 lo convinse a incontrarlo in una località prossima al confine svizzero dove la polizia fascista lo catturò per portarlo a forza in territorio italia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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