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자본에서 은행업으로: Leu & Co.와 취리히의 상인 은행가들
은행가로서의 비단 상인
근세 초기 취리히에서 상업에서 은행업으로 나아가는 거리는 짧았다. 베르가모에서 생사를 사들여 밀라노나 제노바 앞으로 발행된 환어음으로 대금을 치르고, 수백 명의 가내 노동자에게 원료를 선지급하며, 프랑크푸르트 정기시장에서 완제품을 외상으로 판매하던 비단 상인은 이미 은행 업무의 대부분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어음을 인수하고 할인하였으며, 신용을 제공하고, 해외 거래처에 잔고를 두고, 여러 통화로 장부를 관리하였다. 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는 15세기에 곡물과 철을 거래하던 취리히의 상인 엘리트들이 고리대 금지가 완화되자 금전 대부를 겸하게 되었으며, 16세기 후반에 취리히에서 직물 상인 계층이 다시 등장하였다고 지적한다.1 로카르노 출신 가문들은 이 두 번째 집단에 속하였다.
다니엘 오렐리(1653–1726)는 사료가 명시적으로 “상인이자 금융가”로 묘사하는 이 가문의 첫 인물이다.2 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에 따르면 그의 시대에 오렐리 가문은 취리히의 선도적 상인이 되어 있었으며, 1700년까지 그러한 지위에 올랐다. 그들은 18세기 중반에는 3위로, 1797년에는 9위로 내려앉았다.3 이러한 상대적 쇠퇴가 빈곤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는 새로운 가문들의 부상, 그리고 뒤의 절들에서 보듯이 오렐리 가문이 공직, 학문, 출판으로 활동 영역을 다각화한 것을 반영한 것이었다. 같은 사료에 따르면 19세기에는 취리히의 폰 무랄트(von Muralt) 가문을 비롯한 옛 직물 가문 다수가 은행업에 특화하였다.4
Leu & Co.: 민간 저축을 위한 국영 은행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 일컬어져 온 기관은 비단과 면화 거래가 취리히에 축적한 잉여 자본에서 생겨났다. 1755년 취리히시는 재무관 요한 야코프 로이(Johann Jacob Leu)의 지휘 아래 공립 은행을 설립하였다. 이러한 기관에 책임자의 이름을 붙이던 관행에 따라 은행에는 그의 이름이 붙었다. Historisches Lexikon der Schweiz는 이 기관을 대규모 개인 재산과 국가를 대신하여 해외에 자본을 투자하기 위해 설립된 공립 은행으로 묘사한다. 주요 설립자는 한스 콘라트 하이데거(Hans Conrad Heidegger)와 로이 자신이었다.5 로이는 Zinskommission(이자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이 위원회는 취리히 시민의 자금을 해외에 투자하는 독립 기구로서, 대외적으로는 “Leu & Ci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6 이 은행은 1755년 4월 15일 취리히 시청에서 문을 열었으며, 처음에는 단 한 명의 직원이 모든 업무를 처리하였다.7
로이(1689–1768)는 취리히 지배층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법률가로서 연방 내 사법(私法)을 선구적으로 체계화한 Eydgenössisches Stadt- und Land-Recht(1727–1746)의 저자이자, 20권으로 된 Allgemeines Helvetisches, Eydgenössisches oder Schweitzerisches Lexicon(1747–1765)의 편찬자였다. 그는 1736년부터 1742년까지 키부르크의 Landvogt(대관)를 지냈고, 1749년에 재무관, 1759년에 시장이 되었다.8 그의 경력은 정치적 공직, 법학적 학식, 그리고 공적·사적 자본의 관리가 같은 가문들의 손에 어떻게 결합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주석
- Illi and Stadler, “Marchands” (위의 글). ↩
- Lassner, “Orelli, Daniel” (위의 글): “Marchand et financier”. ↩
- Wikipedia, “Orelli family” (위의 글): 1700년까지 선도적 상인, 18세기 중반 3위, 1797년 9위; Huber and Illi, “Orelli” (위의 글), 1700년 무렵의 선도적 지위에 관하여. ↩
- Illi and Stadler, “Marchands” (위의 글), 19세기 초 상인들의 출신 직물 가문 가운데 취리히의 폰 무랄트 가문을 들며, 그중 “다수”가 은행업에 특화하였다고 서술. ↩
- Jan-Henning Baumann, “Banque Leu”, DHS 수록, 2022년 11월 3일 판, https://hls-dhs-dss.ch/fr/articles/041661/ (2026년 10월 4일 확인): “créée en 1755 à Zurich comme banque publique”. Wikipedia, “Bank Leu”, https://en.wikipedia.org/wiki/Bank_Leu (2026년 10월 4일 확인)는 이 은행을 “the oldest Swiss bank”로 묘사한다; Georg von Wyß, “Leu, Hans Jacob”, ADB 18 (1883), 467–469 (위의 글)는 이러한 기관에 책임자의 이름을 붙이던 관습으로 그 명칭을 설명하고, Zinscommission의 창설을 1754년으로 본다. ↩
- Zelger-Vogt, “Leu, Johann Jacob” (위의 글). ↩
- Hans Rudolf Schmid, “Leu, Johann Jakob”, Neue Deutsche Biographie 14 (1985), 363–365 수록, https://www.deutsche-biographie.de/sfz50693.html (2026년 10월 4일 확인): 1755년 4월 15일 시청에서 개업; “Zunächst erledigte ein einziger Angestellter die anfallenden Arbeiten.” ↩
- Zelger-Vogt, “Leu, Johann Jacob” (위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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