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저축과 붕괴
이민과 은행업의 결합에는 1914년에 드러난 어두운 면이 있었다. 이민자 가족의 예금은 로카르노 은행들의 주요 자금원 가운데 하나였다. 이 은행들은 그 돈을 이탈리아에 대출하고, 예금자들이 위험을 판단할 수 없는 철도 및 관광 사업에 투자하였다. Credito Ticinese가 파산하였을 때, 그 예금자 중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수십 년간 일해 모은 저축을 맡긴 가족들도 있었다. Nosetti의 기록에 따르면, 로카르노 철도에 자금을 댔던 파리의 Banque Franco-Américaine이 파산하면서 로카르노의 투자자들은 200만 스위스 프랑 이상을 잃었다. 또한 Banca Svizzera Americana는 여러 은행이 이탈리아에서 행한 잘못된 신용 공여와 투자 때문에 자본금의 40퍼센트, 약 150만 스위스 프랑을 감액해야 했다.1 이렇게 이민자들이 해외에서 번 돈은 티치노로 돌아와 티치노 은행들에 모였다가 그 일부가 해외 투자에서 사라졌다. 이 양상은 행위자가 바뀌고 금액이 훨씬 커진 채로 1945년 이후 루가노 금융 중심지의 역사에서 다시 나타난다.
Banca Svizzera Americana는 위기를 견뎌냈지만, 몇 년 뒤 독립성을 잃었다. 1914년의 손실과 전쟁으로 약화된 이 은행은 더 큰 기관과의 합병을 모색하였고, 취리히의 Union Bank of Switzerland에서 그 상대를 찾았다. 합병 계약은 1920년 1월 1일로 소급하여 효력을 발생하였으며, 1920년 8월 25일 주주총회에서 승인되었다. 24년간의 독립적 존속 끝에 이 은행은 Union Bank의 로카르노 지점과 루가노 지점이 되었다.2 이 은행의 흡수는 티치노 은행 제1세대의 종언이자, 이 장의 뒷부분에서 다루는 스위스 대형 은행들의 진출의 시작을 의미한다.
주석
- Nosetti 2013(앞의 문헌). ↩
- Nosetti 2013(앞의 문헌); Erica Lanzi, “UBS Lugano and Locarno: 100 years in full swing”, Corriere del Ticino, 2020년 10월 23일, https://www.cdt.ch/prodotti/cdt-international/ubs-lugano-and-locarno-100-years-in-full-swing-240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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