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밀수: 국경을 넘는 책
경로, 운반인, 구매자
카폴라고에서 인쇄된 책은 다른 밀수품과 같은 경로를 따라 밀라노의 독자에게 닿았다. 티치노와 롬바르디아 사이의 국경은 산과 계곡, 그리고 두 개의 호수를 가로질렀으며, 국경 마을 주민들은 수 세기 동안 세관을 피해 물건을 나르는 일로 생계의 일부를 이어 왔다. 제A.IV장은 근세의 이러한 상황을 다룬다. 소금, 담배, 커피, 설탕, 직물은 관세의 차이에 따라 북쪽으로 또는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금서도 이 흐름에 합류하였다. 비가노는 금서 자루와 음모 서신 꾸러미를 국경 너머로 옮긴 애국자들의 연결망을 기술한다. 마치니파 루이지 도테시오(Luigi Dottesio)는 1851년 1월 12일 티치노를 떠나던 길에 코모 인근 마슬리아니코(Maslianico)에서 붙잡혔는데, 그때 그는 Tipografia Elvetica의 문서를 지니고 있었다.1 루가노의 마치니 연결망은 오스트리아 당국이 개봉하던 우편을 피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전령을 이용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티치노와 롬바르디아 도시들 사이를 오가던 떠돌이 군밤 장수인 marronai와 가티(Gatti) 가문의 구성원들이 있었다.2
롬바르디아 쪽에서는 애국 단체에 속한 서적상, 학생, 사제, 전문직 종사자들이 책을 배포하였다. 인쇄 비용에 모든 운반인과 중개인의 위험 프리미엄이 더해졌기 때문에 가격은 높았다. 독자는 밀라노, 코모, 베르가모, 브레시아의 교양 있는 중산층이었다. 오스트리아 경찰에게 이런 책을 소지하는 것은 정치적 불충의 증거였다. 독자에게 그것은 아직 공개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민족 운동에 참여하는 한 방식이었다. 이 거래는 이처럼 이중의 성격을 띠었다. 그것은 가격과 신용과 채무가 따르는 상업 활동이었으며, 동시에 형사상 결과를 초래하는 정치적 행위였다.
검열과 경찰
롬바르도-베네토에서 오스트리아의 검열 제도는 사전적이고 중앙집권적이었다. 외국에서 인쇄된 책은 판매하기 전에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긴 금서 목록에 오른 저작에 대해서는 허가가 거부되었다. 국경 세관에는 책을 수색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었고, 경찰은 루가노 현지에도 밀정을 두었다. 밀정은 대부분 이탈리아인이었으나 일부는 티치노인이었다. 마르티놀라는 보수파 landamano 조반 바티스타 콰드리(Giovan Battista Quadri)를 1830년부터 1832년까지 밀라노 경찰에 전달된 보고의 출처로 지목한다.3 오스트리아 외교는 주(칸톤) 정부에 특정 출판물을 금지하도록 거듭 요구하였다. 주 당국은 이따금 압수를 명령하거나 외국 군주에 대한 모욕을 이유로 인쇄업자를 기소하였다. 앞서 언급한 루자의 곤경은 전형적인 예였다. 인쇄소들은 인쇄소 정보를 싣지 않고 명백히 허위인 날짜를 적은 판본으로 대응하였으며, 이로써 오스트리아가 티치노의 인쇄업자에게 보복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반대로 다른 곳에서 인쇄된 저작이 “Lugano”라는 허위 간기를 달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서지학자 칼리스토 칼델라리(Callisto Caldelari)는 훗날 이를 진정한 티치노 판본과 구별하였다.4
주석
- “sacchi di libri proibiti”와 “plichi di corrispondenza cospirativa”, 그리고 “fermato a Maslianico, presso Como, in uscita dal Ticino, il 12 gennaio 1851, con carte dell'Elvetica”였던 도테시오에 관하여 Viganò, 서문(앞의 글). 소토체네리(Sottoceneri) 일대의 밀수 전반에 관해서는 제A.IV장 참조. ↩
- 우편을 피하기 위해 전령으로 이용된 marronai와 가티 가문에 관하여 Martinola, “I mazziniani del Ticino”(앞의 글). ↩
- Romano, Martinola 서평(앞의 글). Giuseppe Martinola, Gli esuli italiani nel Ticino 1791– 1847 (Lugano 1980), 143쪽의 “il personaggio di Giovan Battista Quadri che fra il 1830 e il 1832 trasmetteva rapporti alla polizia milanese”와, 밀정들이 “solitamente italiani, ma anche indigeni”였다고 한 144쪽을 인용한다. ↩
- “pubblicati tuttavia senza note tipografiche e con date palesemente false, per evitare ritorsioni dell'Austria”였던 문헌들, 그리고 티치노에서 인쇄된 저작과 “pubblicate all'estero ma sotto la falsa dicitura ‘Lugano’”였던 저작을 구별한 칼델라리에 관하여 Viganò, 서문(앞의 글). Rinaldo Caddeo, Le edizioni di Capolago (1830–1853) (Milano 1934)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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