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 비단, 금속 제품과 원거리 교역
원거리 교역은 직물이 주도하였다. 북쪽에서는 콘스탄츠와 장크트갈렌의 아마포, 플랑드르·잉글랜드·남부 독일의 모직물, 그리고 퍼스티언과 후일에는 면직물이 들어왔다. 남쪽에서는 밀라노·코모·제노바의 견사와 견직물, 밀라노의 퍼스티언·벨벳·금란, 밀라노 공방의 무기와 갑옷, 종이와 유리가 들어왔고, 여기에 베네치아와 제노바가 레반트에서 수입한 향신료와 염료가 더해졌다.1 이 교역의 수지 구조는 시대에 따라 변하였다. 16세기에 밀라노는 고급 직물과 금속 제품의 수출지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취리히와 바젤의 견직물 산업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생사를 수입하였고, 그 결과 생사는 알프스 횡단 교역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주요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견직물 산업에 관하여는 제B.II장이 로카르노 출신 피난민과 관련하여 서술한다.2
아래 표는 주요 상품의 흐름을 요약한 것이다. 이 표는 수십 년 단위로 달라졌던 교역을 단순화한 것이지만, 기본적인 구도를 보여 준다. 남쪽은 주식용 식량, 사치품, 생사를 북쪽으로 보냈고, 북쪽은 가축, 유제품, 직물을 남쪽으로 보냈으며, 그 차액은 주화와 환어음으로 결제되었다.
상품 방향 주요 산지 및 시장 법적 규율 곡물 북쪽 롬바르디아 시장(바레세, 밀라노 tratte, 코모, 루이노) 조약상 할당량 소금 북쪽 밀라노 전매(해염 조약상 할당량, 재판매 소금) 금지 쌀 북쪽 롬바르디아 평야 통상 관세 소, 남쪽 중부 스위스, 알프스 정기시, 통행세, 조약상 말 계곡 면제 치즈 남쪽 중부 스위스 통행세 (스브린츠) 포도주 북쪽 멘드리시오토, 루가노 지역, 지방 부과금 (지역) 로카르노 지역 견사, 직물 양방향 밀라노, 코모; 취리히, 장크트 통과 통행세 갈렌 금속 제품, 남쪽에서 밀라노 통과 통행세, 수출 무기 북쪽으로 통제
결제와 국제수지
지역 교역은 상품만으로 균형을 이루지 않았다. 목축을 주로 하는 주(칸톤)들은 어떤 해에는 롬바르디아에서 소와 치즈로 지불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곡물, 소금, 포도주를 사들였고, 다른 해에는 가축 교역이 흑자를 가져왔다. 그 차액은 두 가지 흐름이 더 메웠다. 첫째는 프랑스, 스페인 및 다른 열강의 군대에 복무한 연맹 구성원들의 용병 복무로, 이는 급료와 연금을 각 주로 가져왔다. 18세기 초까지 연금은 프랑스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스페인, 베네치아, 사보이아, 밀라노에서 왔다. 가톨릭 주들에서 연금은 때로 정규 공공 세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다(제B.III장). 둘째는 남부 계곡 출신 건축가, 예술가, 장인의 이주로, 이들의 송금은 마을의 자본과 소비를 뒷받침하였다(제A.III장).3 따라서 고트하르트 교역은 상품, 병사의 급료, 연금, 이주민의 저축이 서로 상계되는 보다 넓은 결제 체계 안에 놓여 있었으며, 이 상계는 주로 밀라노, 리옹, 제노바 및 이탈리아 정기시를 지급지로 하는 환어음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러한 수단에 관하여는 제8절에서 다시 다룬다.
흔한 오해. 고트하르트는 무엇보다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의 사치품 교역로였고 스위스의 계곡들은 그 길에서 통행세를 거두었을 뿐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기록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통행세를 낳은 것은 직물과 향신료의 원거리 교역이었지만, 주민의 생계와 각 주의 정책을 결정한 것은 곡물, 소금, 가축, 치즈의 지역 교역이었다. 내륙 주들은 롬바르디아의 곡물과 소금에 의존하였고 롬바르디아 시장은 스위스의 가축에 의존하였으므로, 밀라노와의 관계는 생존의 문제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 관계는 조약으로 규율되었다.
주석
- Schulte(앞의 책), 제1–2권; Glauser(앞의 책). ↩
- HLS, 항목 “Seide”(Liliane Mottu-Weber, 독일어 번역 Alice Holenstein-Beereuter), https://hls-dhs-dss.ch/de/articles/013965/. 1555년 이후 취리히의 로카르노 출신 피난민, 그리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수입된 생사의 유통 중심지로서의 취리히에 관한 서술. 제B.II장 참조. ↩
- HLS, 항목 “Pensioni”(Valentin Groebner, 2011년 11월 3일 판), https://hls-dhs-dss.ch/it/articles/010241/2011-11-03/: “Fino all'inizio del XVIII sec., oltre che dalla Francia, le pensioni venivano versate soprattutto dalla Spagna, da Venezia, dalla Savoia e da Milano”, 그리고 가톨릭 주들에서 연금은 “costituirono oltre la metà delle entrate pubbliche regolari”; HLS, 항목 “Servizio mercenario”(Philippe Henry, Philipp Krauer, 2023년 10월 31일 판), https://hls-dhs-dss.ch/it/articles/008608/2023-10-31/. 모병을 허용한 주들에 지급된 연금에 관한 서술로, 소규모 란츠게마인데 주들에서 이 연금은 “una parte rilevante del bilancio statale”를 이루었다. 제A.III장 및 제B.III장 참조. 추가 문헌: Martin Körner, Solidarités financières suisses au seizième siècle (Lausanne 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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