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시민권: 로카르노 사람들의 법적 지위
보호, 거주 그리고 시민권의 매입
16세기 취리히의 난민에게 결정적인 법적 문제는 시민권이었다. 시민권이 없으면 상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길드에 가입할 수 없었고, 시의회에 의석을 가질 수 없었으며, 영지 내에서 시가 부여하는 수익성 높은 관직을 맡을 수도 없었다. 또한 정치적 분위기가 바뀌면 추방될 위험에 계속 노출되었다. 시민권을 얻으면 그와 그의 남성 후손은 시의 정치적·경제적 특권에 참여할 몫을 얻었다. 여기에는 동등한 조건으로 거래할 권리, 시의 신용 및 자선 기관에 대한 접근, 그리고 궁극적으로 관직에 오를 전망이 포함되었다. 따라서 시민권은 시가 부여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자산이었으며, 시의회도 이를 그렇게 다루었다. 시민권 취득에는 시의회의 공식 결정과 입적금 납부가 필요하였다. 16세기 말부터 스위스의 도시들은 이 입적금을 거듭 인상하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시민권 취득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에 이르렀다.1
로카르노 가문들은 단계적으로 시민권을 얻었으며, 일부는 여러 세대를 기다렸다. 아내 Barbara 및 자녀들과 함께 도착한 내과·외과 의사 Giovanni Muralto는 망명 11년 후인 1566년에 두 아들과 함께 시민권을 받았다.2 Neue Deutsche Biographie는 취리히 분가의 창시자인 외과 의사 Johannes Muralt의 시민권 취득을 1556년으로 기록하며, “투표권이 있는” 시민권이라고 서술한다. 두 연도의 차이는 초기의 보호 또는 제한적 권리 부여와 이후의 공식적 시민권 취득 사이의 구별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으나, 시의회 기록 없이는 확정할 수 없다.3 Orelli 가문에 관해서는 사료가 더 분명하다. Aloisio Orelli의 아들인 Franz와 Johann Melchior Aloys는 아버지가 도착한 지 37년 후인 1592년에 취리히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그때에도 그들의 시민권은 완전하지 않았다. Johann Melchior Aloys는 시민이 되었으나 “완전한 권리를 갖지는 못하였다”.4
완전 시민권과 제한 시민권
완전 시민권과 제한 시민권의 구별은 시민권 취득 행위 자체보다 더 중요하였다. 취리히는 다른 스위스 도시와 마찬가지로 16세기 말부터 권리가 제한된 단계적 시민권 제도를 발전시켰다. 이 제도 아래에서 새 시민은 시의회 의석과 정치적 관직에 접근하지 못한 채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 목적은 기존 가문들의 정치적 독점을 지키면서도 시가 새 이주자들의 부와 기술로부터 이익을 얻도록 하는 데 있었다.5 Orelli 가문은 1606년, 1639년, 그리고 1673년에 다시 완전한 시민권을 거부당하였다. 1679년에 이르러서야 대평의회는 그들에게 완전한 권리를 부여하였다.6 같은 해 Daniel Orelli는 시 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가문 구성원 가운데 처음으로 취리히에서 정치적 직위를 맡은 것이었다. 그는 1687년 우편 책임자가 되었고, 1709년부터는 대평의회에서 사프란 길드를 대표하였다.7
이 연대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Orelli 가문은 1700년 무렵 취리히의 주요 상인 가문에 속하였다. 그러나 상업적 성공을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 줄 완전한 시민적 평등을 얻기까지 망명 후 124년이 걸렸다. Muralt 가문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Caspar Muralt는 1680년 대평의회에, 1685년 소평의회에 들어갔으며, 1685년부터 1798년 사이에 가문의 다른 구성원 네 명이 소평의회에 의석을 가졌다.8 이처럼 로카르노 사람들의 정치적 통합은 17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과 시기가 겹쳤다. 이때 그들이 일구는 데 기여한 견직물 산업은 시의 경제적 기둥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었다.
연도 사건 1555 로카르노 망명자들의 취리히 도착 1556 또는 1566 외과 의사 Johannes(Giovanni) Muralt와 그 아들들의 시민권 취득 1567 키아벤나 출신 Pestalozzi 가문의 시민권 취득 1592 Franz와 Johann Melchior Aloys Orelli의 시민권 취득(완전한 권리는 아님) 1606, 1639, Orelli 가문에 대한 완전 시민권 거부 1673 1679 Orelli 가문의 완전 시민권 취득, Daniel Orelli 시 법원 판사 1680–1685 Caspar Muralt 대평의회 및 소평의회 진출 1778–1785 Hans Heinrich von Orelli 취리히 시장(Bürgermeister)
표: 취리히에서 로카르노 가문 및 관련 가문의 시민적 통합 단계 (출처는 이 절의 각주 참조).
주석
- Holenstein, “Habitants”(앞의 문헌): “A la fin du XVIe s. et au XVIIe, l’accès à la bourgeoisie, tant en ville qu’à la campagne, fut rendu difficile (le relèvement constant des taxes d’admission, la création de catégories de bourgeois aux droits restreints en apportent la preuve [...]), parfois même impossible.” Rainer J. Schweizer and Christina Müller, “Droit de cité”,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Suisse(DHS), 2021년 1월 11일 판, https://hls-dhs-dss.ch/fr/articles/008969/2021-01-11/ (2026년 10월 5일 확인): 근세에 도시들은 시민권 취득을 “de plus en plus ardue, puis impossible”하게 만들었다. 또한 Peyer, Verfassungsgeschichte der alten Schweiz(앞의 문헌) 참조. ↩
- Wikipedia, “Barbara Muralto”(앞의 문헌): 1566년 “Giovanni Muralto와 그의 두 아들은 취리히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Wikipedia, “Muralto family”, https://en.wikipedia.org/wiki/Muralto_family (2026년 10월 4일 확인): 1566년 “Johannes Muralt는 취리히 시민이 되었다”. ↩
- Edgar Bonjour, “Muralt, von”, Neue Deutsche Biographie 18 (1997), 602, https://www.deutsche-biographie.de/sfz69190.html (2026년 10월 4일 확인): Martinus von Muralt는 “als Anhänger der Reformation 1555 mit seiner Familie nach Zürich” 이주하였다. 그의 아들인 외과 의사 Johannes는 1556년에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1566년이라는 연도와의 차이는 시의회 기록(취리히 국가문서고, Staatsarchiv Zürich)과 대조하여 검증하기 위해 여기에 기록해 둔다. ↩
- Wikipedia, “Orelli family”, https://en.wikipedia.org/wiki/Orelli_family (2026년 10월 4일 확인): 1592년 Franz와 Johann Melchior Aloys의 시민권 취득. Wikipedia, “Johann Melchior Aloys von Orelli”, https://en.wikipedia.org/wiki/Johann_Melchior_Aloys_von_Orelli (2026년 10월 4일 확인): 1592년 취리히 시민이 되었으나 “완전한 권리를 갖지는 못하였다”. ↩
- Holenstein, “Habitants”(앞의 문헌), 16세기 말과 17세기에 “catégories de bourgeois aux droits restreints”가 만들어진 데 관하여. Rodolfo Huber and Martin Illi, “Orelli”, DHS, 2017년 5월 3일 판, https://hls-dhs-dss.ch/fr/articles/020179/ (2026년 10월 5일 확인): Franz와 Johann Melchior Aloys Orelli는 1592년 취리히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나 “mais sans droit d’accès aux charges politiques”였다. 완전한 권리는 1606년, 1639년, 1673년에 거부되었고 1679년에 부여되었다. 또한 Peyer, Verfassungsgeschichte(앞의 문헌) 참조. ↩
- Wikipedia, “Orelli family”(앞의 문헌): 1606년, 1639년, 1673년의 완전 시민권 거부, 1679년 대평의회의 완전 시민권 부여. ↩
- Wikipedia, “Daniel Orelli”(앞의 문헌): 1679년 시 법원 판사, “Orelli 가문 구성원 가운데 처음으로 취리히에서 정치적 직위를 맡았다”. 1687–1714년 우편 책임자, 1709년부터 대평의회의 사프란 길드 대표. ↩
- Wikipedia, “Muralto family”(앞의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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