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채무법」 제18조(CO)와 다국어 계약의 해석
스위스법상 계약의 해석은 「스위스 채무법」(CO) 제18조 제1항에서 출발한다. 그 이탈리아어 조문은 다음과 같다. “Per giudicare di un contratto, sia per la forma che per il contenuto, si deve indagare quale sia stata la vera e concorde volontà dei contraenti, anziché stare alla denominazione od alle parole inesatte adoperate per errore, o allo scopo di nascondere la vera natura del contratto.”(계약을 판단할 때에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 관하여 당사자의 진정하고 일치된 의사를 확인하여야 하며, 당사자가 착오로 또는 계약의 진정한 성질을 감추기 위하여 사용한 부정확한 표현이나 명칭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1 연방대법원은 이 조항을 두 단계로 적용한다. 먼저 당사자의 실제 일치된 의사를 찾는다(주관적 해석). 이를 확정할 수 없으면, 법원은 각 당사자가 해당 상황에서 신의성실에 따라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이해하였어야 하는 바대로 의사표시를 해석한다(신뢰원칙에 따른 객관적 해석).2 다국어 계약에서는 각 언어본이 이러한 상황의 일부를 이룬다. 법원은 당사자들이 어느 한 언어본의 의미를 공유하였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고, 어느 한 당사자가 자신의 언어로 된 언어본을 통해서만 문언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이탈리아법도 유사한 방법을 따른다. 「이탈리아 민법전」(c.c.) 제1362조는 법관에게 “indagare quale sia stata la comune intenzione delle parti e non limitarsi al senso letterale delle parole”(당사자의 공통된 의사가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하고 문언의 문리적 의미에 그치지 말 것)을 요구하며, 계약 체결 후의 행위를 포함한 당사자의 전체적인 행위를 고려하도록 한다.3 「이탈리아 민법전」 제1370조는 나아가 일방 당사자가 작성한 표준 서식상의 조항은 의심스러운 경우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해석된다고 규정한다. 스위스법은 불명확성 규칙(regola dell'ambiguità, in dubio contra stipulatorem)을 통해 유사한 결과에 이르며, 연방대법원은 이 규칙을 보통거래약관에 적용한다.4 따라서 두 법질서 모두에서 은행이나 전문 당사자가 작성한 모호한 번역문은 그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해석된다. 루가노의 은행들이 자사 서류의 이탈리아어본을 공들여 작성하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방 법령상의 불일치와 연방대법원
불일치는 계약뿐 아니라 법령에서도 발생한다. 「공포법」 제14조 제1항에 따라 연방 법령의 세 언어본은 동등한 구속력을 가지므로, 어느 언어본도 자동으로 우선하지 않는다. 연방대법원은 서로 다른 언어본을 해석할 때 모든 언어본을 해당 조항의 연혁, 체계 및 목적과 함께 검토한다. 그리고 규범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언어본을 우선시한다.5 이탈리아어권 실무가에게 이 방법은 이중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는 이탈리아어본을 구속력 있는 법으로 원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어본과 프랑스어본이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에는 이탈리아어본에만 의존할 수 없는데, 법원은 세 언어본 모두에 공통된 의미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서비스법」(FinSA)은 루가노의 은행들과 관련된 불일치의 최근 사례를 보여준다. 「금융서비스법」 제9조 제2항은 독일어본에서 Finanzdienstleister(금융서비스 제공자)가 청약 또는 계약 체결 전에 소매고객에게 핵심정보문서를 무상으로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탈리아어본은 2019년의 공식 공포본과 현행 조문 모두에서 fornitori di strumenti finanziari(금융상품 제공자)를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같은 법이 정의하지 않은 표현이다. 같은 법 제3조의 정의 규정은 fornitori di servizi finanziari(d호)와 금융상품을 만드는 자인 produttori(i호)를 언급한다.6 이탈리아어 문언만 따로 읽으면 그 의무가 상품을 공급하는 자에게 부과된다고 해석될 수 있고, 이는 생산자나 청약자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독일어 문언은 그 의무를 금융서비스 제공자에게 부과한다. 문서 작성 의무를 제58조 제1항에서 생산자에게, 문서 교부 의무를 제9조 제2항에서 제공자에게 배정하는 같은 법의 체계는 독일어본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이탈리아어본만을 근거로 자문하는 티치노주의 실무가는 누가 그 문서를 교부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고객을 오도할 수 있다.
주석
- 「스위스 채무법」 제18조 제1항, 이탈리아어 조문은 https://www.droit-bilingue.ch/en-it/2/22/220-18-22.html 참조. 영어 번역은 같은 페이지에 수록된 연방내각사무처의 비공식 영어 번역을 따른다. ↩
- BGE 132 III 268, 판결이유 2.3.2 및 BGE 138 III 659, 판결이유 4.2.1 이래 연방대법원의 확립된 판례. ↩
- Brocardi.it, “Art. 1362 Codice civile – Intenzione dei contraenti”, https://www.brocardi.it/codice-civile/libro-quarto/titolo-ii/capo-iv/art1362.html. ↩
- Codice civile, Art. 1370(“Le clausole inserite nelle condizioni generali di contratto o in moduli o formulari predisposti da uno dei contraenti s'interpretano, nel dubbio, a favore dell'altro”), Brocardi.it, https://www.brocardi.it/codice-civile/libro-quarto/titolo-ii/capo-iv/art1370.html. 스위스의 불명확성 규칙: 「스위스 채무법」 제18조에 관한 판례. ↩
- 「공포법」 제14조 제1항(앞의 주 참조). 서로 다른 언어본의 해석 방법에 관하여는 Ernst A. Kramer, Juristische Methodenlehre, 제6판(Bern 2019), 문리해석에 관한 장 및 연방대법원의 확립된 실무 참조. ↩
- 2018년 6월 15일 금융서비스에 관한 연방법(「금융서비스법」, FinSA), SR 950.1, 제9조 제2항, 독일어 및 이탈리아어 조문은 https://www.droit-bilingue.ch/de-it/9/95/950.1-9-12.html 참조(“Die Finanzdienstleister stellen ihren Privatkundinnen und -kunden das Basisinformationsblatt [...] zur Verfügung”; “I fornitori di strumenti finanziari mettono il foglio informativo di base gratuitamente a disposizione dei clienti privati”). 이탈리아어 문언은 이미 공식법령집(Official Compilation)의 최초 공포본에 나타나 있다. https://www.fedlex.admin.ch/filestore/fedlex.data.admin.ch/eli/oc/2019/758/it/pdf-a/fedlex-data-admin-ch-eli-oc-2019-758-it-pdf-a.pdf 참조. 이 공포본은 제3조 d호에서 fornitori di servizi finanziari를, 제3조 i호에서 produttori를 정의하고, 제58조 제1항에서 문서 작성 의무를 produttore에게 부과한다. 영어 조문은 https://www.droit-bilingue.ch/en-it/9/95/950.1-9-12.html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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