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라파르와 스위스의 환대 외교
국제연맹이 제네바에 자리 잡게 된 데에는 William Rappard의 공이 크다. 제네바의 교수이자 경제학자이며 외교관이었던 그는 파리 강화회의와 Wilson 대통령 앞에서 제네바를 옹호하였고, 이후 국제연맹의 고위 관료가 되었다가 국제문제대학원을 설립하였다.1 그의 경력은 개개의 제네바 시민들이 스위스의 네트워크와 제네바의 명성을 바탕으로 열강에 대한 개인적인 교섭을 통해 자기 도시의 사명을 형성하였음을 보여준다.
이후 스위스의 유치 외교는 전문화되었다. 다음 장에서 서술하는 바와 같이, 연방, 주(칸톤), 시는 국제기구를 유치하고 붙잡아 두기 위한 법적·재정적·실무적 수단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제네바 시민, 개인적 관계, 내세울 명성이라는 본래의 모델은 금융 중심지가 그 네트워크와 이미지를 가꾸는 방식에서 여전히 알아볼 수 있다.
국제노동사무국을 위해 지어진 호숫가의 건물에 자리한 세계무역기구 본부는 오늘날 Centre William Rappard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2 이렇게 국제연맹을 옹호하였던 한 제네바 시민의 이름이 세계무역의 규칙이 협상되는 장소를 가리키게 되었으며, 이는 국제 제네바의 두 시대를 잇는 상징적 연결고리이다.
주석
- Wikipedia (en), “William Rappard”: 1883년 4월 22일 뉴욕에서 스위스인 부모에게서 출생, 1958년 4월 29일 사망. 강화회의 스위스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highly influential in persuading him [Wilson] to choose Geneva as headquarters of the League of Nations”; 위임통치국 국장(1920-1925), 상설위임통치위원회가 존속한 18년 내내 그 위원; Paul Mantoux와 함께 국제문제대학원 공동 설립(1927); 제네바 대학교 총장(1926). ↩
- Wikipedia (en), “Centre William Rappard”: 국제노동사무국을 위해 1923년부터 1926년까지 건설되어 1926년 6월 6일 준공; 1977년부터 GATT, 1995년부터 WTO가 사용; 1977년 William Rappard의 이름을 따서 명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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