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시장이 남긴 것
제네바 정기시는 1460년대부터 쇠퇴하였는데, 그 이유는 다음 장에서 분석한다. 그럼에도 정기시는 기념물과 기록물을 훨씬 넘어서는 지속적인 유산을 남겼다.
첫째 유산은 노하우이다. 한 세기 넘게 제네바 사람들은 외국인을 맞이하고, 여러 언어를 구사하고, 다양한 통화를 다루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귀중품을 감정하고, 지급을 조직하는 법을 익혔다. 이 인적 자본은 정기시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가문과 직업 안에서 전승되었고, 새로운 기회가 생길 때 다시 동원된다.
둘째 유산은 네트워크이다. 제네바를 드나든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상인들은 이곳에서 관계를 맺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정기시의 쇠퇴 이후에도 살아남았는데, 특히 리옹과의 관계가 그러하였다. 리옹은 16세기에 프랑스 왕국의 대(大)은행 중심지가 되었고, 많은 제네바 사람과 프로테스탄트 망명자들이 그곳에서 활동하게 된다.
셋째 유산은 평판이다. 제네바는 유럽에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비교적 안전하며, 외국인에게 열린 상업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이 평판은 16세기에 망명자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활동이 자리 잡는 것을 수월하게 하였다.
넷째 유산은 취약성에 대한 자각이다. 정기시의 경험은 통과 지점의 번영이 이웃 주권자의 결정 하나로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제네바 사람들은 이로부터 정치적 교훈을 얻었다. 동맹의 모색, 독립에 대한 의지, 활동의 다각화가 그것이다. 이 교훈은 16세기의 선택에 반영된다.
끝으로 다섯째 유산은 제네바에서 행해진 은행업의 본질 자체에 있다. 정기시의 은행가들은 국제 네트워크로 조직된 외국인이었고, 국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다른 곳에서 온 기관과 고객을 맞아들이는 중심지라는 이 구도는 외국 은행과 비거주자 고객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오늘날 금융 도시 제네바의 특징으로 남아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그 사이에 제네바가 자신의 은행가들을 배출하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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