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의 전쟁과 위그노 신용
개신교 은행의 첫 번째 큰 시험은 루이 14세의 마지막 전쟁들 동안 찾아온다. 1680년대 말부터 1714년까지 프랑스는 유럽 동맹들을 상대로 길고 값비싼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다.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과 그에 이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다.1 이 전쟁들은 막대한 지출을 요구하였으며, 조세로는 이를 충당하기에 부족하였다. 군주정은 차입과 재정적 임시방편에 대대적으로 의존한다.
군대의 자금 조달은 특별한 문제를 제기한다. 프랑스 군대는 이탈리아, 독일, 저지대 국가, 스페인에서 싸운다. 군대에는 현지에서 현지 통화로 급여를 지급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 이전이 필요하다. 은행가들은 군대가 작전하는 중심지나 제네바, 암스테르담 같은 중간 중심지 앞으로 발행한 환어음을 통하여 이러한 이전을 조직한다.
그 역설은 놀랍다. 낭트 칙령을 막 폐지하고 수천 명의 개신교도를 망명으로 내몬 루이 14세는 전쟁 자금 조달을 개신교 은행가들에게 의존한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망명자이거나 망명자의 친척이며, 그들의 네트워크는 적국에까지 뻗어 있다. 치세 말기의 가장 유명한 궁정 은행가 사뮈엘 베르나르(Samuel Bernard)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는 하였지만 개신교 가문 출신이었다.2 그의 주위에는 필요한 자금과 거래 상대방을 공급하는 제네바와 위그노 은행가들이 모여 있다.
이 체제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동안 한계에 이른다. 약정의 누적, 왕실 증권의 가치 하락, 재원의 고갈은 심각한 지급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1700년대 첫 10년이 끝날 무렵 리옹 정기시의 결제 때 발생한 위기는 사뮈엘 베르나르와 그 거래 상대방들의 네트워크를 뒤흔들었으며, 그 가운데 여럿이 파산한다.3 자금을 선대한 제네바 자본가들은 손실을 입는다.
루이 14세 치세 말기의 위기는 개신교 은행가들이 완전히 잊지는 않을, 그러나 그 후계자들이 때때로 잊게 될 교훈을 준다. 전쟁 중인 국가의 신용은 취약하며, 그 신용을 조직하는 중개자들은 위험의 일부를 떠안는다는 것이다. 과도한 부채를 진 군주에게 자금을 대는 일은 한동안 높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신뢰가 무너지면 급격한 손실이 뒤따른다.
사례. 한 제네바 은행가가 이탈리아에 있는 프랑스 군대에 20만 리브르를 공급하기로 하고, 그 대가로 6개월 후 지급되는 왕실 재무부 앞 환어음을 받으며, 수수료와 이자는 금액의 12퍼센트에 해당한다고 하자. 재무부가 만기에 지급하면 은행가는 2만 4,000리브르를 벌며, 이는 연 24퍼센트의 수익률이다. 재무부가 2년이나 늦게, 그것도 40퍼센트 가치가 하락한 증권으로 지급한다면, 은행가는 실질 가치로 13만 4,400리브르만을 회수하여 자신의 차입 비용을 계산에 넣지 않더라도 6만 5,600리브르를 잃는다. 수치는 가상의 것이다. 이 수치는 왕실 전쟁의 자금 조달이 왜 눈부신 이익과 파멸의 위험을 함께 안고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주석
- Larousse, 온라인 백과사전, “guerre de la Ligue d’Augsbourg”: “1688년부터 1697년까지 프랑스와 제2차 유럽 동맹이 맞선 분쟁”으로, 레이스베이크 조약(1697)으로 종결되었다. “guerre de la Succession d’Espagne”: 헤이그 대동맹(1701년 9월 7일), 1702년 5월 15일 선전포고, 위트레흐트 조약(1713년 4월 11일)과 라슈타트 조약(1714년 3월 6일). ↩
- Encyclopædia Universalis, “Samuel Bernard”: “파리 예술가들의 개신교 가문” 출신으로, 낭트 칙령 폐지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700년부터 1714년까지 그는 국왕에게 2억 리브르를 공급하였다”. 귀족에 서임되어 쿠베르 백작(1725)이 되었다. Wikipedia (en), “Samuel Bernard (financier)”: 루이 14세는 1708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그에게 의지하였다. ↩
- Encyclopædia Universalis, “Samuel Bernard”: “1709년 그는 약정을 이행할 수 없었던 리옹에서 완전한 파산을 모면하였다”. Herbert Lüthy, La Banque protestante en France de la Révocation de l’Édit de Nantes à la Révolution, 전 2권, Paris, S.E.V.P.E.N., 1959–1961 (재간행 Paris, Éditions de l’EHESS, 1998), 제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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