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파동과 현물시장의 탄생
독립 석유 트레이딩은 시장의 단절에서 탄생했다. 1970년대까지 석유는 대형 통합 석유회사들이 판매했다. 이들은 채굴, 운송, 정제, 유통을 폐쇄적인 사슬 안에서 수행했고, 그 안에서 트레이딩이 차지할 자리는 거의 없었다. 1970년대 산유국들의 국유화와 1973년 및 1979년의 두 차례 석유 파동이 이 사슬을 끊어 놓았다. 산유국의 국영 석유회사들은 스스로 정제하지 않는 원유를 팔아야 했고, 독립 정유회사들은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더 이상 공급하지 않는 원유를 사야 했다. 그 결과 현물시장이 발전했는데, 처음에는 로테르담에서, 이후에는 브렌트(Brent)와 WTI 기준가격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1 독립 트레이더들은 서로 알지 못하는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의 물동을 조직함으로써 이 공간을 차지했으며, 그중 여러 곳이 스위스에 자리를 잡았다.
제네바는 앞선 장들에서 설명한 이유로 그 몫을 차지했다. 모든 생산자와 거래할 수 있게 해 준 중립성, 화물에 대한 금융을 제공할 의향이 있는 은행들의 존재, 시간대, 신중함, 그리고 2020년 개혁 이전까지 트레이딩 회사들에 유리한 지위를 제공한 조세제도가 그것이다. 이 세대의 트레이더들은 흔히 메이저 석유회사나 곡물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들이 세운 기업은 지금도 그들의 이름이나 방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앞에서 설명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후계 기업들은 그 문화를 물려받았다. 위험 감수, 신속성, 생산자와의 개인적 인맥, 그리고 이후의 사건들로 인해 변화할 수밖에 없었던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인식이 그것이다.
주석
- ICE, “Evolution of Brent, its markets and why its ecosystem is relied upon by commercial participants” (ice.com): 1983년 최초의 브렌트 화물 거래, 1984년 유전 생산량 정점, 1988년 6월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nternational Petroleum Exchange)에서 브렌트 선물계약 출범, 바스켓에 Forties와 Oseberg(2002년), Ekofisk(2007년), Troll(2018년) 추가; “Nearly two-thirds of the spot export market is linked to Brent”; Wikipedia (en), 항목 “1980–1989 world oil market chronology”: 1983년 3월 NYMEX 원유 선물계약, 1985년 8월부터 사우디 가격의 현물시장 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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