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엘리트와 제국
제네바의 엘리트들은 프랑스 통치에 대해 다양한 태도를 취하였다. 일부 명사는 제국 행정당국에 협력하여 공직을 맡고 데파르트망 기관의 활동에 참여하였다. 다른 이들은 자신의 영지로 물러나 거리를 두었다. 또 다른 이들은 특히 영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독립 회복의 희망을 이어갔다.
학술 및 문화 기관은 제네바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응용과학, 예술, 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18세기 말에 설립된 예술협회(Société des Arts)는 활동을 이어갔다.1 제네바의 학자들은 전쟁 중에도 학술지를 발간하고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과 서신 교류를 유지하였다.2
이러한 지적 활동은 1813년 이후 제네바의 부흥을 가능하게 할 인적 연결망과 역량을 유지시켰다. 왕정복고 임시정부를 구성한 명사들은 대개 이러한 학자 및 귀족 계층 출신이었다. 언어, 법, 외교, 금융에 관한 이들의 지식은 제네바의 연방 가입을 협상하고 새로운 주(칸톤)의 제도를 재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제D부는 그 재건 과정을 추적한다.
주석
- Wikipedia (fr), “Société des arts de Genève”: “Société pour l’avancement des arts, de l’agriculture et des manufactures de Genève는 1776년 시계 제작자 Louis Faizan과 학자 Horace Bénédict de Saussure가 설립하였다”; 세 개의 부문(미술, 농업 및 생활 기술, 산업 및 상업)으로 구성되며, 1863년부터 Jean-Gabriel Eynard가 기증한 아테네 궁(Palais de l’Athénée)을 소유하고 있다. ↩
- Wikipedia (en), “Marc-Auguste Pictet”: “1796년 그는 동생 Charles, 친구 Frédéric-Guillaume Maurice와 함께 Bibliothèque Britannique라는 월간지의 편집을 시작하였다”; 이 잡지는 Davy, Herschel, Rumford, Wollaston의 연구를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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