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지대: 맞춤형 경제 국경
제네바가 연방에 가입할 당시 그 주변에 설정된 자유지대는 주목할 만한 법적 혁신이다. 스위스,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 사이에 새로 그어진 국경은 제네바를 식료품을 공급해 주던 자연적 배후지로부터 단절시킬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고립을 피하기 위해 조약은 페이 드 젝스와 사부아 북부의 일부 인접 지역을 프랑스 또는 사르데냐의 관세선 밖에 두도록 규정하였다. 그 결과 이 지역의 산물은 과도한 장애 없이 제네바로 들어올 수 있었다.1
이 제도는 한 세기 넘게 존속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가 이를 폐지하려 하면서 스위스와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상설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었고, 재판소는 프랑스가 자유지대를 일방적으로 폐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2 이후의 합의로 이 제도의 실무적 세부사항이 정리되었다.
자유지대의 역사는 작은 금융 중심지가 협상과 법을 통해 자신의 지리적 여건에 맞는 제도를 얻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러한 제도가 이웃 국가의 선의에 의존하며 언제든 문제 삼아질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매일 국경을 넘나드는 통근 근로자의 흐름과 여러 협력 협정을 갖춘 오늘날의 프랑스·보·제네바 지역은 이러한 국경 간 제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 안정성은 스위스와 이웃 국가들의 관계, 특히 유럽연합(EU)과의 양자협정에 달려 있다.
주석
- Archives d’État de Genève, “Les zones franches (1)” 및 “(2)” 페이지(archives-etat-ge.ch): 1815년 파리 조약으로 프랑스는 페이 드 젝스의 여러 기초자치단체(게마인데)를 할양하고 관세선을 쥐라 산맥 뒤로 물렸다. 1816년 토리노 조약으로 사르데냐 국왕은 생쥘리앵을 대가로 여러 기초자치단체를 할양하였고, 두 번째 지대(살레브, 안마스, 두벤)가 설정되어 1829년에 확대되었다. 제네바의 “농업 보급지”였던 이 지대들은 사람과 식료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였다. 1860년 사부아 주민투표(“Oui et Zone”)로 이 제도는 주느부아, 샤블레, 포시니로 확대되었다.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Suisse (DHS), “Zones franches” 항목. ↩
- Archives d’État de Genève, “Les zones franches (2)” 페이지: 베르사유 조약은 병합 지대를 폐지하고 자유지대를 지역 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스위스 국민은 이를 거부하였다. 1923년 푸앵카레 정부는 자유지대를 일방적으로 폐지하고 관세 경계선을 정치적 국경으로 되돌렸다. 스위스는 1928년 젝스 지대와 사르데냐 지대가 1815년 및 1816년 조약에 근거한다고 주장하며 헤이그의 재판소에 제소하였다.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Suisse (DHS), “Zones franches” 항목: 1932년 6월 7일 상설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은 스위스가 자유지대 산물에 특혜를 부여하는 대가로 소지대를 복원하였다. 1933년 12월 1일의 테리테 중재판정이 현행 제도의 기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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