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직면한 Fabrique: 쥐라, 뇌샤텔과 프랑스
제네바 파브리크(Fabrique)의 번영은 모방자들을 불러들였다. 18세기에 걸쳐 시계 제조업은 뇌샤텔 산지와 쥐라, 특히 르로클과 라쇼드퐁에서 제네바와는 매우 다른 형태로 발전하였다.1 이 지역의 농민 시계공들은 긴 겨울 동안 집에서 일하였으며, 생산을 조율하는 에타블리쇠르(établisseur)를 위해 작업하였다. 이들의 노동은 더 저렴하였고, 제네바 동업조합의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이들은 더 저렴한 시계를 점점 더 많은 수량으로 생산하였다.
제네바 파브리크는 이러한 경쟁에 시장 상층부로 특화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사치 시계, 장식된 케이스, 에나멜, 컴플리케이션 시계가 그것이다. 파브리크는 품질, 마감, 평판에 의지하였다. 이 전략 덕분에 파브리크는 높은 마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유행과 위기에 민감한 부유층 고객에 의존하게 되었다. 품질을 보장하던 동업조합 규정은 더 민첩한 경쟁자들 앞에서 제네바 생산의 유연성을 제한하기도 하였다.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제네바 시계공들을 유치하고 자국의 생산을 발전시키려 하였으며, 볼테르가 세운 페르네 제작소가 이를 보여 준다. 장인들의 이주를 부추긴 18세기 말 제네바의 정치적 혼란은 이러한 시도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이리하여 파브리크는 숙련 인력의 일부를 경쟁자들에게 잃었다.
이 역사는 오늘날의 금융 중심지가 잘 알고 있는 교훈을 준다. 시장 상층부에 특화한 중심지는 서비스의 품질이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는 한 번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심지는 비슷한 서비스를 더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거나 그 인재를 끌어가는 경쟁자들과 맞서야 한다. 더 저렴한 중심지들과의 경쟁과 마진 압박에 직면한 제네바 자산관리업도 같은 질문을 검토해야 했다. 품질은 어디까지 가격을 정당화하는가, 인재를 어떻게 붙잡아 둘 것인가, 적응에 필요한 유연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제네바 시계 제조업은 이러한 시련을 이겨 냈으며, 21세기에도 사치와 정밀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여러 매뉴팩처가 제네바와 그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노하우, 강력한 브랜드, 유통 장악, 혁신 능력의 결합에 기반한다. 수 세기에 걸쳐 구축된 이 결합은 평판에 기초한 특화가 적응 능력을 동반할 때 지니는 가치를 보여 준다.
핵심. 쥐라와 프랑스의 경쟁에 직면하여 제네바 파브리크는 시장 상층부로 특화하였다. 마진을 지키는 대신 중심지를 위기와 인재 유출에 노출시키는 이 품질과 평판의 전략은 오늘날 제네바 자산관리업의 상황에서 직접적인 반향을 찾을 수 있다.
주석
-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Suisse (DHS) [스위스 역사 사전], 항목 “Jeanrichard, Daniel”: 1665년경 레브레셀(라사뉴 기초자치단체(게마인데))에서 태어나 1741년 르로클에서 사망하였으며, “1692년부터 시계 장인 또는 금세공 장인으로 언급된다”. 그를 뇌샤텔 시계 제조업의 창시자로 그리는 전설은 1830년대와 1840년대에 생겨났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최초의 진정한 시계 공방을 조직한 능력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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