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rse française(프랑스인 구호기금)
프랑스 난민의 유입은 특별한 문제를 낳았다. 많은 이들이 빈털터리로 도착했고, 도시 재원으로 운영되던 종합구빈원(Hôpital général)은 이들 모두를 떠맡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난민들은 스스로 구호기관인 ‘프랑스 기금’(Bourse française)을 조직하였다. 이 기금은 난민 가운데 부유한 이들의 기부로 재원을 마련하였고, 공동체에서 선출된 집사들이 운영하였다.1 다른 공동체들, 특히 이탈리아인 공동체와 독일인 공동체도 이와 비슷한 기금을 만들게 된다.2
프랑스 기금은 가난한 난민, 병자, 과부와 고아를 도왔다. 도제 수업 비용을 대 주었고, 사람들이 생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소액을 빌려주었으며, 여비를 지급하고 프랑스로 파송되는 목사들을 지원하였다. 프랑스 기금은 새로 도착한 이들의 정착을 쉽게 하고 도시의 부담을 덜어 주는 사회안전망이었다.
이 기관은 금융 중심지의 역사에서 특히 흥미롭다. 이는 민간 기부자가 재원을 대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운영되며, 회계 보고 의무를 지는 공동체 자선의 한 형태를 보여 준다. 또한 공통의 종교적 정체성과 망명이라는 공통의 경험에 기초한 난민 간의 연대가 큰 경제적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 준다. C부에서 18세기에 다시 만나게 될 위그노의 연대 네트워크는 이러한 기관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례. 한 젊은 난민이 아무런 재산 없이 제네바에 도착한다. 프랑스 기금은 처음 몇 달 동안 그에게 생활비를 지급하고, 이어 3년 동안 인쇄 장인 밑에서의 도제 수업 비용을 댄다. 직인이 되고 다시 장인이 된 그는 이번에는 자신이 기금에 기여하고, 사망할 때 기금에 유증을 남긴다. 최초의 지원액이 30플로린이고 이후의 기여액이 60플로린이라면, 기관은 생산적인 수공업자를 도시 경제에 편입시키면서 지출액을 두 배로 불린 셈이 된다. 이 수치는 가상의 것이다. 이는 난민 구호의 바탕에 깔린 사회적 투자의 논리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수많은 재단을 거느리고 국제기구의 재원 조달에서 역할을 하는 오늘날 제네바의 자선 활동은 오랜 전통의 일부를 이룬다. F부에서는 오늘날 프라이빗 뱅크와 자산관리인의 업무 가운데 한 부문을 이루는 이 분야를 다시 다룬다.
주석
- Musée protestant, “Le Refuge huguenot en Suisse”(museeprotestant.org): 프랑스 기금은 1545년 David de Busanton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1687년 한 해에만 약 1만 플로린을 지급하였다.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Suisse(DHS), 항목 “Réfugiés protestants”: 개혁파 주(칸톤)들에서 난민의 구호와 사회적 통제를 위해 “난민청”(Chambres des réfugiés)과 “기금”(Bourses, 또는 프랑스인 조합)이 설립되었다. ↩
- Archives d’État de Genève, “Archives hospitalières”: 1550년대에 설립된 프랑스 기금과 함께, 이 기록물은 각 국적 난민을 위한 구호기금인 이탈리아 기금(Bourse italienne)과 독일 기금(Bourse allemande)을 기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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