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세계 속 스위스의 안정
브레턴우즈 협정에 기초한 전후 통화 질서는 금 태환이 가능한 달러를 중심으로 고정환율 체제를 구축하였다.1 브레턴우즈 기구에 곧바로 가입하지 않은 스위스는 상당한 금 보유고에 뒷받침된 강한 통화를 유지하였다.2 스위스 프랑은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찾는 안전 자산 통화가 되었다.
스위스의 정치적 안정은 많은 나라가 겪은 격변과 대조를 이루었다. 유럽에서 프랑스는 제4공화국의 종말, 알제리 전쟁, 1968년의 사건들을 겪었다. 이탈리아는 만성적인 정부 불안정에 시달렸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쿠데타, 혁명, 인플레이션이 잇따랐다. 중동에서는 탈식민지화, 분쟁, 증가하는 석유 수입이 사회를 변화시켰다. 아프리카에서는 독립으로 새로운 엘리트층이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 모든 상황에서 부유한 가문들은 자산의 일부를 안전한 나라에 맡겨 보호하고자 하였다.
1970년대 초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말과 석유 파동은 통화 불안정을 더욱 키웠다. 스위스 프랑은 급격히 절상되었는데, 이는 안전 자산으로서의 매력을 강화하였으나 수출 경제에는 부담이 되었다. 일정한 시기에 국립은행은 외국 자본의 유입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는데, 비거주자 자산에 대한 마이너스 수수료가 그 예이다.3
제네바는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큰 혜택을 입었다. 국제 자산관리의 전통, 프랑스어권 문화, 프랑스와의 근접성, 그리고 지중해 세계·중동·아프리카와의 연계로 제네바는 많은 자본이 선호하는 목적지가 되었다. 유엔 사무국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존재는 중립적이고 개방된 도시라는 이미지를 강화하였다.
요점. 1945년 이후 전쟁, 혁명, 인플레이션으로 점철된 세계에서 스위스의 정치적·통화적·법적 안정은 제네바를 전 세계 부유한 가문의 자본이 선호하는 목적지로 만들었다.
주석
- 1944년 7월 1일부터 22일까지 열린 브레턴우즈 회의, 금 태환 달러를 중심으로 한 고정환율 체제, 1971년 8월 미국의 태환 정지.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Suisse, “Bretton Woods, accords de”, hls-dhs-dss.ch, 2004년 10월 15일. ↩
- 스위스의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 가입은 1992년 5월 17일 국민투표로 승인되었고 1992년 11월에 발효되었다.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Suisse, “Bretton Woods, accords de”, 앞의 글. ↩
- 스위스 국립은행(SNB), 통화정책 조치 연표(snb.ch): 외국 자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금지하고 프랑화 표시 외국 자산에 수수료를 도입한 1972년 7월의 명령(RO 1972 1521), 1974년 11월의 새로운 조치(RO 1974 1822), 1975년 1월 금지 대상의 모든 프랑화 표시 외국 자산으로의 확대 및 수수료 인상(RO 1975 105), 1978년 2월 수수료 인상(RO 1978 246), 1980년 2월 일부 폐지(RO 1980 213 및 214), 1980년 8월 전면 폐지(RO 1980 1110 및 1111). 프랑은 1973년 1월 23일부터 변동환율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1978년 10월 1일 SNB는 환율을 “100마르크당 80프랑을 훨씬 밑도는” 수준으로 끌어내리겠다는 의사를 발표하였다. 또한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Suisse(DHS), 항목 “Banque nationale suisse”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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