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의 제네바 은행가들
제네바 경제가 쇠퇴하는 동안, 파리에 자리 잡은 제네바 및 스위스 출신 은행가들은 통령정부와 제정기에 중요한 지위를 되찾았다. 1800년에 설립된 프랑스 은행(Banque de France)의 초대 이사들 가운데에는 개신교 및 스위스 네트워크 출신 은행가가 여럿 있었다.1 혁명을 견뎌 낸 이 은행가들은 프랑스 금융 제도의 재건과 나폴레옹 국가의 재정 조달에 참여하였다.
이들의 존재는 개신교 은행 네트워크의 회복력을 보여 준다. 위기, 파산,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 네트워크는 스스로를 재건하였고 새 체제에 적응할 수 있었다. 혼인 동맹과 사업 관계를 통해 유지된 이들과 제네바의 유대는 1815년 이후 제네바 금융 중심지의 부흥을 준비하게 된다.
프랑스 은행의 설립은 공공재정의 역사에서도 한 단계를 이룬다. 프랑스는 처음으로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을 모델로 삼아 적절히 변형한, 통화를 관리하고 신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건전한 발권은행을 갖게 되었다. 반세기 뒤에 이루어진 이 개혁은 18세기 제네바 은행가들이 왕정의 금융 제도에서 관찰하였던 약점에 대한 해답이었다.
주석
- Musée protestant (museeprotestant.org), “La banque Mallet”(Mallet 가문은 프랑스 은행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Guillaume Mallet는 이사(régent)였다), “La banque Hottinguer”(Jean-Conrad Hottinguer는 공동 설립자이자 1803년부터 1828년까지 이사) 및 “La famille Delessert”(Étienne Delessert는 1800년 공동 설립자, Benjamin Delessert는 1802년부터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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