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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시에서 은행업으로: 1387년부터 1536년까지의 제네바

제네바에 왜 은행이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정기시(定期市)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기시는 종교개혁보다, 공화국보다, 그리고 이 도시의 어떤 은행보다도 오래되었다. 정기시의 작동 방식은 이 도시가 습득한 역량을 설명하고, 정기시의 종말은 제네바가 왜 다른 무언가가 되어야 했는지를 설명한다.

1년에 네 번의 정기시

제네바의 정기시는 1187년부터 기록에 나타난다. 14세기에는 1년에 네 차례, 곧 주현절, 부활절, 8월 1일의 성 베드로 쇠사슬 축일, 만성절에 열렸다. 기간은 처음에는 7일, 이후 10일, 마지막에는 15일이었다. 상인들은 사보이아, 페이 드 보, 발레, 피에몬테, 스위스의 여러 주(칸톤), 부르고뉴, 도피네, 프로방스에서 왔으며, 그중에는 샬롱쉬르손의 정기시에도 드나들던 프리부르산 직물 상인들도 있었다. 15세기에는 상인이자 은행가인 경우가 많았던 이탈리아인들이 우위를 차지하였다.

이 도시는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었다. 오래된 축은 샹파뉴의 정기시에서 제노바로 이어졌고, 새로운 축은 카탈루냐와 슐레지엔을 연결하였다. 제네바의 로베르로 태어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1390년경 이 정기시를 후원하였으며, 정기시의 융성은 이 시기부터 시작된다.

정기시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이러한 종류의 중세 정기시는 여러 단계로 진행되었다. 이 단계들이 중요한 것은 개최 도시가 어떤 역량을 제공해야 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먼저 montre(몽트르), 곧 진열 단계가 있었다. 상품을 풀어 내보이고, 가격이 형성되고, 거래가 성사되었다. 이어 인도와 계약서 작성 단계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공증인이 필수적이었다. 공증인이 작성한 계약서는 다른 곳에서도 인정되는 증명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다음이 지급 단계였다. 그리고 바로 이 지급 단계가 제네바를 금융 중심지로 만들었다.

정기시 기간 중에 발생한 채권들은 서로 상계되었고, 잔액만이 주화로 결제되었다. 정기시와 정기시 사이에 잔액을 넘겨 주는 수단이 환어음이었다. 피렌체의 상인이 피렌체의 상사에 돈을 지급하면, 그 상사는 제네바 지점 앞으로 어음을 발행하였고, 수취인은 제네바에서 다른 통화로 대금을 받았다. 송금, 환전, 만기까지의 신용 공여가 한 장의 증서에 결합되었고, 거래의 수익은 환율 차이로 나타났다. 형식상 이자는 받지 않았으므로 교회법학자들은 만족하였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그 마진은 시간과 위험의 대가였다.

1387년의 특허장

1387년 아데마르 파브리 주교는 시민들이 물려받은 자유를 문서로 기록하게 하였다. 이 특허장은 재판 절차, 경제, 정치권력의 배분이라는 세 영역을 규율하였다.

경제사에서 결정적인 조항은 합리적인 이율의 이자부 대출을 허용한 것이었다. 서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교회법상의 이자 금지 때문에 상인들이 가장매매, 환율 마진, 외상 매입과 같은 우회 수단을 써야 했고, 그때마다 비용과 법적 위험이 더해졌다. 제네바에서는 이러한 우회가 필요하지 않았다.

절차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였다. 소송은 구두로, 약식으로, 프랑스어로 진행되었으며, 로마법의 형식주의를 피하였다. 시민들은 관리들과 함께 재판에 참여하였다. 며칠 안에 떠나야 하는 상인들에게는 우아하게 판단하는 법원보다 신속하게 판단하는 법원이 더 가치 있다.

누가 누구를 재판하였는가

중세 도시 제네바의 재판권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주교는 제네바의 군주로서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 재판을 하였다. 주교의 사법관인 vidomne(비돔)은 민사 사건과 경미한 범죄를 심리하였으며, 1290년부터 민사 재판권은 사보이아 백작이 봉토로 보유하였다. 시민 대표인 시정관들은 비교적 가벼운 형사 사건을 처리하였다.

이 삼분 체제 때문에 제네바의 정기시는 이탈리아 영사 모델과 같은 자율적인 상인 법원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또한 이 체제는 이후 150년에 걸쳐 이어진 갈등도 설명해 준다. 그 갈등은 1536년의 종교개혁이 주교의 세속 권력을, 그리고 그와 함께 사보이아의 비돔 제도를 끝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중세 상인법이라는 신화

법제사는 오랫동안 lex mercatoria(상인법)를 이야기해 왔다. 관행에 기초하고 전문 법정이 적용하는 초국가적 상인법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는 이러한 상을 상당히 수정하였다. 가장 강력한 비판에 따르면, 국가의 개입 없이 상인들이 만들어 낸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상인법이란 근대의 구성물이다. 상인 법원은 존재한 곳에서도 지역적이었고 영주 권력의 통제를 받았다. 상인들 스스로도 지역 법원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플랑드르 도시들의 길드 규약은 회원들에게 분쟁을 선출된 길드 대표 앞에 가져가도록 요구하였다. 그리고 계약은 통상 계약 체결지의 법을 준거로 삼았다.

실제로 존재한 것은 환어음, 상사 조합, 부기, 지급 기한에 관한 공통의 관행이었다. 이 관행 덕분에 서로 다른 군주의 신민들 사이의 거래가 가능하였다. 제네바는 별도의 법질서 없이도 이 공통 관행의 혜택을 누렸다.

복식부기

정기시에 온 이탈리아 상사들에게는 또 하나의 이점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회계로 파악할 수 있었다. 14세기와 15세기에 이탈리아의 상업 도시들에서 발전한 복식부기는 모든 거래를 두 번, 곧 한 계정의 차변과 다른 계정의 대변에 기록하므로 합계가 항상 일치한다. 루카 파치올리는 1494년 베네치아에서 인쇄된 논저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서술하였다.

여러 도시에 지점을 둔 상사에게 이는 결정적이었다. 복식부기를 통해 각 지점의 상황을 확정하고, 멀리 있는 대리인을 통제하며, 이익과 현금을 구별할 수 있었다. 이들 상사와 거래한 제네바 상인들은 그들로부터 이 방법을 배웠다.

1462년과 1463년: 정기시를 끝낸 결정

1462년 루이 11세는 프랑스 상인이 제네바 정기시에 참가하는 것과 외국 상인이 그 목적으로 왕국을 통과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1463년 3월 8일의 개봉 칙허장으로 그는 리옹에 15일짜리 정기시 네 개를 부여하였다. 이 정기시들은 왕의 보호를 받았고 droit d'aubaine(외국인 유산 몰수권)이 면제되었으며, 제네바와 겹치도록 고른 날짜, 곧 주현절, 콰지모도 주일, 8월 4일, 만성절에 열렸다.

효과는 빠르고 되돌릴 수 없었다. 메디치 은행은 1465년까지 주요 지점을 리옹으로 옮겼고, 피렌체의 대형 상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제네바 정기시는 형식상 계속되었으나 국제적 역할을 잃었고, 16세기 후반에 사라졌다.

통행세를 통해 정기시에서 수입을 얻던 사보이아 공국은 보복 대신 유인책으로 대응하였다. 아라곤과의 협정을 비롯한 외교 협정, 교량의 유지와 도로의 치안, 주화의 품질에 주의를 기울인 통화 정책, 도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대륙 전체의 교역 흐름이 바뀌는 것에 맞서기에는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도시에 미친 결과

14세기와 15세기에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던 인구는 정체되었다. 직물과 사치품이 여전히 주된 산업이었다. 1530년에는 또 한 번의 타격이 닥쳤다. 스위스 연방 동맹 측이 요구한 배상금은 2만 6,000 라인 플로린에 이르렀다. 이 금액은 모든 제네바 시민에 대한 부과금과 리옹에 있던 피렌체 은행가들로부터의 차입으로 마련되었다. 덧붙이자면 이 부과금 덕분에 동산과 부동산의 목록이 작성되었고, 이는 당시 도시의 물질적 상황에 관한 일급 사료가 되었다.

도시에 남은 것

정기시는 네 가지를 남겼고, 그 각각이 훗날 금융 중심지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

  • 공증 전통. 해외에서도 인정되는 증서를 작성할 수 있는 역량이다.
  • 환어음에 관한 전문성과 채권 상계에 관한 전문성.
  • 거래처 네트워크. 이탈리아, 프랑스, 저지대 국가들의 상업 도시에 걸친 네트워크이다.
  • 자본. 영토가 작고 토지가 부족하여 국내에서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이다.

1536년 종교개혁이 채택되고 곧이어 첫 종교 피난민들이 도착하자, 이 자본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이 결합으로부터 두 세기에 걸쳐 은행업이 생겨났다. 정기시는 살아남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기시가 만들어 낸 역량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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