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제네바는?
이 논쟁으로부터 제네바 금융 중심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무엇을 끌어낼 수 있는가? 몇 가지 결론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연대에 관한 것이다. 칼뱅 시대인 16세기의 제네바는 주요 은행 중심지가 아니었다. 당시 그 제도와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지만, 제네바의 은행업은 위그노 네트워크, 프랑스 공공재정, 그리고 제네바 엘리트 내부의 자본 축적이 결합된 17세기 말과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도약하였다. 따라서 칼뱅과 은행업 사이의 연결은 여러 세대와 근본적인 변화를 거쳐 이어진다.
둘째는 제도에 관한 것이다. 종교개혁은 제네바에 경제 발전에 유리한 제도를 갖추어 주었다. 합의제의 비교적 안정된 정부, 조직된 사법 제도, 명성 있는 교육 제도, 효과적인 공공 구빈, 그리고 신뢰를 강화하는 사회적 규율이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개인의 도덕적 성향 못지않게 중요하였다.
셋째는 인구와 관계망에 관한 것이다. 종교개혁에 이끌려 온 난민의 유입은 제네바에 자본, 기술, 네트워크를 가져다주었다. 위그노 디아스포라의 가문적·종교적 유대는 18세기 제네바 은행가들이 사업을 구축하는 토대가 된 신뢰의 기반 시설을 제공하였다. 뤼티가 제시한 소수자 네트워크에 의한 설명은 제네바의 사례에 특히 잘 들어맞는다.
넷째는 교육에 관한 것이다. 콜레주와 아카데미는 교육받은 엘리트를 양성하였다. 프로이센 연구에 견줄 만한 자료는 없지만, 인적 자본 테제는 제네바에서 유리한 토양을 발견한다.
다섯째는 문화에 관한 것이며, 신중함을 요한다. 칼뱅주의 전통과 결부된 절제, 신중함, 책임, 노동의 가치가 제네바 명문가의 문화를 형성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는 개신교에 고유한 것이 아니며, 이에 반하는 행태와도 공존하였다. 칼뱅주의 문화를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로 보고, 이를 제네바 성공의 유일한 원인으로 삼는 설명을 경계하는 것이 신중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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