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가 금융 중심지에 주는 교훈
근대적 금융 중심지에 관한 책을 켈트족의 성벽과 로마의 은접시로 시작하는 것은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장소의 초기 역사가 주는 몇 가지 교훈은 오늘날까지도 바젤을 형성하고 있다.
첫째 교훈은 바젤이 언제나 통과의 장소였다는 점이다. 바젤의 번영은 라인강의 교역, 쥐라 고개를 넘는 교통, 군대와 순례자의 이동 등 바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흐름에 의존했다. 통과에 기대어 사는 도시는 그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안전, 예측 가능한 규칙,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근대 금융 중심지가 내세우는 미덕, 즉 신뢰성, 신중함, 법적 안정성, 그리고 서로 다른 법질서에 속한 당사자 간의 거래를 처리하는 역량의 기원이다. A부 제3장에서는 중세 도시가 시장, 주조소, 세관, 시립 환전소의 형태로 이러한 서비스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살펴본다.
둘째 교훈은 국경이 하나의 자원이라는 점이다. 라인강은 로마 제국의 국경이었으며, 이후에도 주교구 사이, 제국과 연방 사이, 스위스·프랑스·독일 사이 등 다양한 형태의 경계로 남았다. 국경은 분리하는 동시에 연결한다. 국경은 가격, 세금, 규칙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이 차이에서 교환이 생겨난다. 국경은 도시에 중개자로서의 기능을 부여한다. 그리고 국경은 이를 가로질러 작동할 수 있는 제도, 즉 조약, 법원, 혼합위원회,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는 국경 간 금융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유로에어포트, 슈트라스부르크의 라인강 항행 중앙위원회가 운영하는 라인강 항행 체제, 그리고 국제결제은행(BIS)은 각자의 방식으로 국경을 생산적으로 만드는 제도들이다.
셋째 교훈은 불안의 시기에 부가 안전을 찾는다는 점이다. 카이저아우크스트 보물의 소유자는 국경이 위협받자 자신의 은을 땅에 묻었다. 바젤 시민들은 성벽을 쌓고, 곡물을 비축하고, 화폐를 주조했다. 16세기의 피난민들은 자신의 자본을 바젤로 가져왔고, 마찬가지로 20세기의 외국인 고객들은 스위스 은행에 자산을 예치했다. 안전한 피난처에 대한 수요는 스위스 금융 중심지의 변함없는 상수이며, E부의 은행 비밀유지, 자금세탁, 제재에 관한 장들이 보여주듯이 가장 큰 법적 위험과 평판 위험의 원천이기도 하다.
넷째 교훈은 제도가 그것을 만들어 낸 상황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뮌스터 언덕은 근대 도시의 상징적 중심이 되기 전에 켈트족의 오피둠이었고, 로마의 요새였으며, 주교의 성채였다. 라우라키족의 이름은 켈트 시대 이후 2,000년 동안 살아남았다. 로마의 계약법은 로마 제국보다 오래 살아남아 대학을 통해 되돌아왔다. 이런 의미에서 금융 중심지는 여러 층위의 축적이다. 오늘날 바젤에서 돈을 다루는 방식을 규율하는 규칙과 관행에는, 누구도 금융과 결부시키지 않을 시대에 내려진 선택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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