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9년 이후의 십일조, 지대와 농촌
종교개혁은 바젤 농촌 지역의 종교생활을 바꾸어 놓았으나, 농민들이 지고 있던 공과금에서 그들을 해방시키지는 않았다. 교회에 납부되던 십일조는 이제 도시의 관리인들이 징수하여 개혁교회, 학교 및 빈민을 위한 목적에 사용하였다. 수도원에 납부하던 지대와 공과금은 도시로 넘어갔다. 종교개혁이 자신들의 부담을 줄여 주리라 기대하였던 농민들에게 이 변화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1525년의 소요는 그들의 기대를 보여 주었다. 당시 이루어진 양보는 종교개혁 이후 일부 철회되었다.1
십일조는 도시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으며, 농촌 주민들이 가장 원망하던 부담 중 하나였다. 그것은 곡물, 포도주 및 그 밖의 작물 수확량의 10분의 1을 현물로 내는 세금으로, 들판에서 징수되어 도시의 십일조 창고에 보관되었다. 그 징수에는 상당한 행정 조직이 필요하였고, 그 가치는 수확과 곡물 가격에 따라 달라졌다. 도시는 일부 십일조의 징수를 민간 십일조 청부인에게 임대하였다. 청부인은 고정된 금액을 납부하고 자신의 위험 부담으로 십일조를 징수하였다. 이 관행은 흉작의 위험을 청부인에게 이전하고 도시에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였다.
바젤에서 십일조는 19세기 중에 폐지되었다. 그에 앞서 1798년 헬베티아 혁명이 원칙적으로 그 폐지를 선언하였고, 주(칸톤)들이 보상을 대가로 한 그 상환을 조직하였다.2 십일조의 상환은 농민들이 매년의 의무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원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그 재원은 일부 대출로 조달되었다. 이는 19세기 농촌 신용과 주립은행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D부는 이러한 맥락에서 1899년 Basler Kantonalbank의 설립을 살펴본다.
주석
- 종교개혁 이후 바젤 농촌 지역에서의 십일조와 공과금의 존속 및 농촌의 기대에 대한 실망에 관하여는 HLS, “Basel-Landschaft” 항목 중 16세기 부분 참조. ↩
- 1798년 이후 스위스에서, 그리고 19세기 바젤주에서의 십일조와 봉건적 공과금의 폐지 및 상환에 관하여는 HLS, “Zehnt” 및 “Grundlasten” 항목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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