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년 이후의 상부 라인 네트워크
맹약자 동맹 가입이 바젤과 상부 라인 도시들 사이의 유대를 끊은 것은 아니었다. 교역은 계속해서 강을 따라 흘렀고, 서적 거래는 바젤을 스트라스부르 및 프랑크푸르트와 연결하였으며, 바젤의 가문들은 계속해서 알자스와 브라이스가우의 가문들과 혼인을 맺었다. 바젤, 스트라스부르 및 그 밖의 여러 상부 라인 도시들이 1520년대에 받아들인 종교개혁은 정치적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냈다.
바젤은 북서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알자스의 도시 뮐루즈와 특별한 관계로 이어져 있었다. 뮐루즈는 1515년 맹약자들과 동맹을 맺었고, 프랑스 공화국 편입을 의결한 1798년까지 맹약자 동맹의 준회원, 즉 zugewandter Ort로 남아 있었다.1 이처럼 거의 3세기 동안 알자스 한가운데에 스위스 도시가 존재하였고, 그 상인과 제조업자들은 바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18세기에 뮐루즈는 날염 면직물, 즉 indiennes(앵디엔)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그 기업가들은 스위스와 연고를 가진 개신교 가문 출신이었다. 19세기에 뮐루즈는 바젤의 산업과 나란히 발전한 섬유 및 화학 산업을 갖춘 프랑스의 대표적인 산업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뮐루즈와의 관계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자세히 검토하는 양상을 잘 보여 준다. 그것은 정치적 경계를 넘어서는 상부 라인 지역경제의 형성으로, 이 지역경제 안에서 자본, 기업가, 노동자, 기술이 바젤, 알자스, 바덴 사이를 이동한다. 알자스와 독일 출신 기업가들이 창업자에 포함된 바젤의 화학 산업은 이 지역의 섬유 염색 산업에서 성장하였다. 국경 간 통근자, 공동 공항, 통합된 노동시장을 갖춘 오늘날의 3국 접경 지역은 이 지역경제의 현대적 형태이다.
주석
- 1515년부터 1798년까지 스위스 맹약자 동맹의 준회원(zugewandter Ort)이었던 뮐루즈와 1798년 그 프랑스와의 통합에 관하여는 HLS, 항목 “Mülhausen”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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