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무렵의 스위스 보험시장
21세기 첫 사반세기 스위스 보험업의 통합은 2001년과 2002년 무렵 업계를 강타한 위기를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기술주 거품 붕괴 이후의 주가 하락,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그리고 일련의 전략적 오류가 스위스 최대 보험회사 여러 곳의 약점을 동시에 드러냈다. 1990년대에 인수를 통해 급성장한 Zurich Financial Services는 2002년 대규모 손실을 보고하고, 최고경영자를 교체하였으며, 주주들로부터 신규 자본을 조달하였다.1 그룹은 살아남았고 이후 세계 유수 보험회사로서의 지위를 회복하였다.
훗날 그룹 전체의 명칭으로 Swiss Life를 채택한 생명보험회사 Rentenanstalt는 이보다 더 깊은 위기를 겪었다. 스위스 최대의 생명보험회사이자 직업연금의 선구자였던 이 회사는 주식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은행업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주가가 하락하자 자본이 바닥났고, 회사는 신규 자금을 조달하고 경영진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2 Rentenanstalt의 위기는 직업연금에서 생명보험회사가 하는 역할에 관한 정치적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연금계약에서 얻은 잉여금과 그 잉여금을 보험계약자와 주주 사이에 어떻게 배분하는지가 공적 관심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입법자는 이러한 논쟁에 대응하여 직업연금 사업에 이른바 법정 배분비율(Legal Quote)을 도입하였다. 이에 따라 생명보험회사는 이 사업에서 나온 수익의 90% 이상을 보험계약자에게 배분하여야 한다.3 같은 개혁 시기에 2004년 「보험감독법」과 스위스 지급여력시험(Swiss Solvency Test)이 마련되었으며, 이는 제II장에서 상세히 다룬다. 이렇게 2002년의 위기는 스위스 보험 감독이 주로 자산의 보수적 평가와 감독기관의 재량에 의존하던 시대의 종언을 알렸다.
Baloise는 일부 대형 경쟁사들보다 나은 상태로 위기를 넘겼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1990년대의 확장이 보다 신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Baloise는 자본을 확충하고 주식 익스포저를 줄여야 했다. 이 경험은 이후 20년 동안 그룹의 위험 문화를 형성하였고, 보수적이고 건실한 보험회사라는 평판에 기여하였다.4 이 평판은 두 당사자가 모두 재무 건전성과 신중한 투자 정책을 강조한 2025년 합병 협상에서 자산이 되었다.
주석
- 2002년 Zurich Financial Services의 위기, 최고경영자의 퇴진 및 자본 재확충에 관하여는 Zurich Financial Services의 2002년 연차보고서와 당시의 금융 언론 보도 참조. ↩
- 증자, 고위 경영진을 위한 투자펀드를 둘러싼 논란, Swiss Life로의 명칭 변경을 포함한 2002년 Rentenanstalt/Swiss Life의 위기에 관하여는 Swiss Life Holding의 연차보고서와 당시의 언론 보도 참조. ↩
- 생명보험회사의 직업연금 사업에 대한 최저 배분비율(Legal Quote)에 관하여는 「보험감독법」(ISA) 제37조 및 「보험감독령」(ISO) 제139조 이하 참조. ↩
- 2001–2003년 자본시장 위기가 Bâloise Holding에 미친 영향과 그에 따른 조치에 관하여는 2001–2003년 연차보고서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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