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과 일반 대중
바젤의 프라이빗 뱅크는 상인, 제조업자, 도시귀족 가문, 기관 등 엘리트에게 봉사하였다. 장인, 소매상인, 하인, 노동자 등 일반 주민은 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서민의 저축을 위하여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계몽주의와 박애주의 운동은 새로운 제도, 즉 저축은행을 만들어 냈다.
1809년 이자크 이젤린이 설립한 선과 공익 증진 협회(GGG)는 노동 인구의 절약을 장려하기 위하여 바젤에 이자부 저축은행인 Zinstragende Ersparniskasse를 설립하였다.1 이 저축은행은 소액 예금을 받아 이자를 지급하고, 대개 저당대출과 공공증권에 안전하게 투자하였다. 그 목적은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노후, 질병, 자녀 교육을 위하여 저축하도록 돕고, 앞날을 대비하는 태도와 자립의 미덕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저축은행 운동은 19세기 전반 스위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박애주의 단체, 기초자치단체(게마인데), 교회가 설립한 저축은행들은 수십만 명의 소액 예금자로부터 저축을 모았다. 이들은 국내 주민에게 봉사하고 저당대출과 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현대 스위스의 지역은행과 주(칸톤)립은행의 전신이었다.
저축은행은 은행과 공중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도입하였다. 프라이빗 뱅커가 개인적으로 아는 소수의 부유한 고객에게 봉사한 반면, 저축은행은 알지 못하는 다수의 소액 예금자에게 봉사하였다. 그 신뢰성은 공적 또는 박애주의적 설립 주체의 뒷받침, 보수적인 투자 정책, 투명성에 달려 있었다. 은행이 제도적 신뢰를 바탕으로 대다수 주민에게 봉사하는 이 모델은 이후 주립은행,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형 상업은행의 모델이 된다.
주석
- 1809년 GGG가 바젤에 설립한 Zinstragende Ersparniskasse에 관하여는 스위스 역사사전(HLS), 항목 “Sparkassen”; GGG의 역사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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