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강 굽이: 지리, 켈트인 정착지와 아우구스타 라우리카 — 결론
결론
바젤은 라인강이 굽이도는 곳, 곧 북해, 부르고뉴, 스위스 고원과 이탈리아에서 오는 교통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하였다. 켈트 상인들은 2천여 년 전 가스파브리크(Gasfabrik) 정주지에서 지중해산 포도주를 현지 물산과 교환하였고 주화를 사용하였다. 로마인들은 몇 킬로미터 상류에 번영한 식민도시 아우구스타 라우리카(Augusta Raurica)를 건설하였고, 이후 라인강의 국경을 요새화하였다. 바실리아(Basilia)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374년, 바로 이곳에서이다. 주교좌는 로마 요새에서 바젤로 옮겨졌고, 하인리히 2세의 보호 아래 주교 도시 바젤은 11세기 초에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토대가 훗날 도시의 선택지를 규정하였다. 통과와 환적의 장소로서의 역할, 국경에 놓인 위치, 강에 대한 의존, 그리고 불안정한 환경 속의 안전한 장소로서의 기능이 그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바젤의 주교들이 이러한 선택지를 어떻게 제도로, 무엇보다 화폐 주조권, 통행세 징수권과 시장 개설권으로 전환하였는지, 그리고 그들의 재정난이 어떻게 시민들로 하여금 이 권리들을 넘겨받을 수 있게 하였는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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