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9년 종교개혁: 외콜람파디우스와 새로운 시민 질서 — 결론
결론
1529년의 종교개혁은 수년간의 망설임 끝에 무장한 길드들이 바젤 시의회에 강요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으로 미사가 폐지되고, 성상이 파괴되고, 가톨릭 시의원들이 축출되었으며, 주교와의 분리가 완성되고, 대학은 3년 동안 문을 닫았다. 1529년 4월 1일의 종교개혁령은 시의회의 통제를 받는 국가 교회, 혼인 법원, 새로운 빈민 구제 제도와 엄격한 도덕 규율을 확립하였다. 교회 재산은 시의 관리 아래 놓여 목회자, 학교, 대학과 빈민을 위해 사용되었다. 로마로의 납부는 중단되었다. 프로벤의 교정자였고 에라스뮈스의 협력자였던 요하네스 외콜람파디우스가 개혁을 이끌며 그 신학과 교회 질서를 형성하였다. 교회 규율에 관한 그의 사상은 칼뱅에게 영향을 미쳤다.
종교개혁은 도시의 경제 문화를 변모시켰다. 종교개혁은 근로, 검약과 신중함을 장려하였고, 공공 기금을 만들었으며, 공동체의 재정 주권을 확립하고, 바젤을 개혁교회 세계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다음 장에서는 칼뱅이 1536년 바젤에서 출판한 책, 그리고 바젤과 제네바를 잇는 개혁교회의 신용 윤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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