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바젤의 경제 문화
1529년의 종교개혁은 바젤의 경제 문화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교회 재산을 시민 행정으로 이전하고, 교육과 빈민 구호를 위한 공적 기부재산의 전통을 확립하였다. 로마에 대한 납부를 끝내고 공동체의 재정 주권을 내세웠다. 노동, 절약 및 신중함을 장려하고 사치와 나태를 억제하는 도덕적 권징을 부과하였다. 길드와 정부의 시민적 성격을 강화하였다. 바젤을 개혁파 세계의 일원으로 만들어, 취리히, 제네바, 스트라스부르, 팔츠,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및 잉글랜드와 연결하고, 프랑스, 이탈리아 및 저지대 국가 출신의 개혁파 망명자들에게 문을 열게 하였다.
종교개혁에는 대가도 따랐다. 그것은 도시의 예술 유산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였다. 에라스뮈스와 많은 학자들, 그리고 가톨릭 주민의 일부를 떠나게 하였다. 대학을 3년 동안 폐쇄하였다. 바젤을 가톨릭 환경 속의 프로테스탄트 섬으로 만들었고, 이후 수 세기의 교파 분쟁에 노출시켰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많은 이들이 억압적이라고 느낀 도덕적 통제를 부과하였다.
금융 중심지의 역사에서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아마도 돈의 윤리에 미친 영향일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은 부에 대한 도덕적 의혹을 바꾸어 놓았다. 부는 정직한 노동으로 취득되고 책임 있게 사용된다면 정당한 것이 되었다. 영업에서의 이윤 추구는 하나님과 공동체를 섬기는 한 형태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는 이자의 수용, 그리고 개혁파 도시들에서의 은행업 발전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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