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의 청산
1946년 워싱턴 협정으로 해결되었던 전쟁 중 스위스 금융 중심지의 행보에 관한 문제들은 1990년대에 다시 제기되었다. 1995년 세계유대인회의(World Jewish Congress)와 다른 단체들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것이었으나 그 상속인들이 회수하지 못한 스위스 은행의 휴면계좌 문제를 제기하였다. 상속인들이 회수하지 못한 것은 은행들이 사망증명서와 그 밖의 서류를 요구하였는데, 살해된 사람들의 상속인들은 이를 제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앨폰스 다마토 상원의원을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였다. 이어 미국 법원에서 스위스 은행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이 제기되었다.1
스위스 정부와 은행들은 여러 조치로 대응하였다. 1996년 스위스은행협회와 유대인 단체들은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폴 볼커를 위원장으로 하는 저명인사독립위원회(Independent Committee of Eminent Persons)를 설립하였다. 이 위원회는 전쟁 시기 스위스 은행 계좌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여, 나치 박해 희생자와 관련이 있을 개연성이 높거나 관련 가능성이 있는 계좌 수만 개를 확인하였다. 같은 해 스위스 의회는 역사학자 장프랑수아 베르지에를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전문가위원회 스위스–제2차 세계대전(Independent Commission of Experts, Switzerland – Second World War)을 설립하였다. 이 위원회는 기업과 은행의 문서고에 대한 특권적 접근권을 가졌으며,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보고서를 발간하였다.2
1998년 8월 UBS와 Credit Suisse는 미국 집단소송의 원고들과 포괄적 화해를 체결하고, 나치 박해 희생자와 그 상속인들에게 12억 5,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하였다.3 이 사건은 스위스 금융 중심지의 평판에 지속적인 손상을 입혔으며, 스위스 역사와 전쟁에 관한 국가적 신화를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휴면자산의 처리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현재 스위스 은행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휴면자산을 보고하고 공고하여야 한다.4
1998년 스위스 유니언 은행(Union Bank of Switzerland)과 합병하여 UBS가 된 바젤의 스위스 은행 코퍼레이션(Swiss Bank Corporation)도 관련 은행 가운데 하나였다. 이로써 휴면계좌 사건은 이 부에서 추적해 온 바젤 은행사의 원을 완결하였다. 1854년 바젤 프라이빗 뱅커들의 컨소시엄에서 성장한 은행이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나 나치 정권이 살해한 사람들의 자산에 대하여 해명하여야 했던 것이다.
주석
- 스위스 은행에 있는 홀로코스트 희생자 휴면계좌를 둘러싼 논란(1995년 이후), 세계유대인회의와 앨폰스 다마토 상원의원의 역할, 그리고 미국 법원에 제기된 집단소송에 관하여는 독립전문가위원회의 최종 보고서 및 휴면계좌 사건에 관한 문헌 참조. ↩
- 저명인사독립위원회(ICEP, 볼커 위원회, 1996–1999)와 독립전문가위원회 스위스–제2차 세계대전(베르지에 위원회, 1996년 12월 13일 연방 결의로 설립, 2002년 최종 보고서)에 관하여는 두 기구의 보고서 참조. ↩
- 미국 뉴욕 동부 연방지방법원이 승인한 1998년 8월 UBS 및 Credit Suisse와 미국 집단소송 원고들 간의 포괄적 화해(12억 5,000만 달러)에 관하여는 Holocaust Victim Assets Litigation 기록 참조. ↩
- 스위스 은행법상 휴면자산에 관한 규정(「스위스 은행법」(BankA) 제37l조 및 제37m조, 「은행령」(BankO) 제45조 이하)과 휴면자산의 공고에 관하여는 관련 법령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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