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제
독일어로 Verlagssystem이라 불리는 선대제는 공장 이전 유럽에서 지배적인 산업 조직 형태였다. 상인, 즉 Verleger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생산자들에게 원료와 때로는 도구를 선대하고, 완성된 제품을 합의된 가격에 다시 사들였다. 생산자들은 형식적인 독립성을 유지하였다. 그들은 상인에게 고용된 사람이 아니라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자기 속도로 일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원료, 주문, 소득을 상인에게 의존하였고, 그들의 독립성은 흔히 실질적이기보다는 외견상의 것이었다.1
B부에서 보았듯이 바젤에서 선대제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성벽 안에서 기계식 직기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한 도시의 길드들은 상인들이 길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농촌에서 리본을 짜게 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쥐라 산지 골짜기에 마을들이 자리한 도시의 농촌 영역에는 추가 소득이 필요하고 상인들을 위해 기꺼이 직조할 소농과 토지 없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18세기에 이르러 바젤 농촌의 마을들에서는 수천 대의 직기가 가동되고 있었고, 그곳에서 리본 직조는 농촌 인구 상당 부분의 주된 소득원이 되었다.2
이 체제는 상인들에게 이점이 있었다. 그들은 건물에 투자하거나 일 없는 노동자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도 수요에 따라 생산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었다. 그들은 농업 소득을 보충하던 농촌 인구의 낮은 인건비로부터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도시의 길드 규제를 피할 수 있었다. 이 체제에는 단점도 있었다. 원료가 몇 주 동안 많은 생산자에게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많은 운전자본이 필요하였다. 작업이 흩어진 가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품질 관리가 어려웠다. 그리고 원료 횡령의 기회를 만들어 냈는데, 상인들은 내어 준 비단과 돌아온 리본의 무게를 세심하게 달아 이에 대처하였다.
상인과 직공 사이의 중개인, 즉 Fergger 또는 Botten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도시에서 마을로 비단과 도안을 운반하고, 완성된 리본을 거두고, 직공들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작업의 품질과 직공들의 신뢰성을 보고하였으며, 때로는 직기의 유지·보수를 감독하였다. 농촌에서 상인의 대리인으로서 그들은 정직하고 유능해야 했으며, 이는 체제가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자질이었다. 상인, 대리인, 직공의 관계는 현대 공급망의 조직을 예고하는 신뢰와 통제의 사슬이었다.
주석
- 유럽 원(原)공업화에서의 선대제(Verlagssystem)에 관하여는 원공업화에 관한 문헌(예: Kriedte/Medick/Schlumbohm, Industrialisierung vor der Industrialisierung, 1977) 참조. ↩
- 18세기 바젤 농촌의 가내 리본 직조 규모(수천 대의 직기)에 관하여는 HLS, 항목 “Posamenterei”; Museum.BL의 간행물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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