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이후의 뮌스터
1529년 성상과 제단을 빼앗긴 바젤 대성당은 개혁파 도시의 주교회가 되었다. 내부는 흰색으로 칠해졌고, 성가대석은 개혁파 예배에 맞게 개조되었으며, 설교단이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대성당은 바젤 개혁파 성직자단을 주재하는 도시의 수석 목사, 즉 Antistes의 자리로 남았다. 이 직위를 처음 맡은 외콜람파디우스는 대성당 회랑에 묻혔으며, 그의 묘는 지금도 볼 수 있다. 종교개혁 때문에 도시를 떠났던 에라스뮈스는 생을 마치기 위하여 돌아왔고, 1536년 개혁파 성직자단과 대학이 참여한 가운데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종교개혁가와 종교개혁을 거부한 인문주의자, 즉 외콜람파디우스와 에라스뮈스의 묘가 대성당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은 16세기 바젤의 성격을 상징한다. 바젤은 종교개혁을 받아들였으나 그에 앞선 인문주의 학문에 대한 존중을 간직하였고, 자신의 종교 혁명을 이끈 인물과 그에 반대한 인물 모두를 기렸다. 서로 다른 전통을 함께 아우르고, 반대자를 기리며, 교파 논쟁의 극단을 피하는 이러한 능력은 바젤을 일부 개혁파 이웃 도시들과 구별 짓는 것이었고, 학문과 절제의 도시라는 바젤의 명성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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