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의 화폐 세계
도시의 재정을 살펴보기에 앞서, 그 상인과 관리들이 활동한 화폐 세계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복수 통화의 세계였으며, 계산화폐와 실물 주화 사이의 근본적인 구별이 있는 세계였다.
계산화폐는 가격, 채무, 장부를 표시하는 단위였다. 옛 카롤링거 제국의 영역 전반에서 계산화폐는 카롤루스 대제가 도입한 체계를 따랐다. 1파운드(libra, Pfund)는 20실링(solidi, Schillinge)으로, 1실링은 12페니(denarii, Pfennige)로 나뉘었다. 파운드와 실링은 계산 단위일 뿐이었으며, 수 세기 동안 이에 대응하는 주화가 없었다. 페니가 유일한 실물 주화였고, 그 은 함량이 장부가 기재되는 파운드의 가치를 결정하였다.1
실물 주화는 많고도 다양하였다. 바젤의 상인들은 현지의 페니와 라펜 외에도 여러 조폐소의 주화를 취급하였다. 국제 교역의 금화인 피렌체의 플로린과 베네치아의 두카트가 있었다. 라인 굴덴도 있었는데, 이는 네 명의 라인 선제후, 즉 마인츠, 트리어, 쾰른의 대주교와 팔츠 백작이 1386년에 체결한 화폐동맹에 따라 주조한 것으로, 15세기에 라인란트와 남부 독일의 지배적인 금화가 되었다. 그 밖에 프랑스의 écus, 밀라노와 사보이아의 주화, 그리고 독일 여러 조폐소의 그로셴 은화가 있었다.2 각 주화는 현지 계산화폐로 표시된 가치를 가졌으며, 이 가치는 주화의 무게, 순도, 그리고 시장에서의 금은 비가에 따라 변동하였다. 플로린으로 대금을 받고 페니로 채무를 갚는 상인은 환위험을 부담하였다.
15세기에 큰 금액을 표시하는 단위였던 바젤 Gulden은 라인 굴덴을 가리켰다. 바젤시 자체도 15세기부터 황제의 특권에 따라 금 굴덴을 주조하였다. Batzen은 15세기 말 베른에서 처음 주조되어 곧 다른 스위스 도시들이 모방한 은화로, 16세기에 스위스 연방의 표준 은화가 되었다. 근세에 들어서는 대형 은화인 탈러가 이 계열에 합류하였다.3
이러한 화폐의 다양성은 금융의 발전에 세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는 환전상의 중요성이다. 환전상은 주화를 감정하고 교환하며 여러 통화로 잔고를 보유하였다. 바젤에서는 Hausgenossen(조폐 조합원)이, 후에는 Stadtwechsel(시립 환전소)이 이 기능을 수행하였다. 둘째는 장부의 중요성이다. 상인들은 계산화폐로 장부를 기재하고 모든 수입과 지급을 이 계산화폐로 환산하였다. 이러한 장부는 주화의 물리적 이전 없이 채무를 결제하는 기초가 되었다. 셋째는 발행자에 대한 신뢰의 중요성이다. 주화의 가치는 그 발행자가 보증하는 만큼이었다. 조폐소가 주화의 무게와 순도를 유지한다는 평판이 그 화폐의 수용을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피렌체 플로린과 베네치아 두카트의 명성은 두 공화국의 화폐 안정성에 대한 평판에 기초하였다.
1850년 이래 각 주의 통화를 대체하였으며 그 안정성이 스위스 금융 중심지의 기둥 가운데 하나인 스위스 프랑은 이러한 경험의 계승자이다. 스위스 프랑의 명성은 플로린의 명성과 같은 기초, 즉 발행자의 안정성에 대한 제도적 약속에 기초한다. 베른과 취리히에 본부를 둔 스위스 국립은행(SNB)이 이 명성을 유지한다. 바젤의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이루어지는 SNB와 다른 중앙은행들의 협력은 제F부에서 살펴본다.
주석
- 카롤링거 계산 체계(1파운드 = 20실링 = 240페니)와 중세 후기 상라인 지역 계산화폐에서의 그 존속에 관하여는 표준적인 화폐학 문헌; HLS, 항목 “Münzwesen” 참조. ↩
- 1386년 라인 선제후들의 화폐동맹(Kurrheinischer Münzverein)과 라인 굴덴에 관하여는 중세 후기 독일 주화에 관한 화폐학 문헌 참조. ↩
- 황제의 특권에 따라 주조된 바젤 금 굴덴과 바첸(1492년경 베른에서 처음 주조)에 관하여는 HLS, 항목 “Münzwesen” 및 “Batzen”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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