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의 주도 산업
17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거의 두 세기 동안 비단 리본 산업은 바젤의 주력 산업이었다. 이 산업은 도시와 그 농촌 인구의 상당 부분을 고용하였고, 유력 가문들의 부를 만들어 냈으며, 바젤을 유럽과 세계의 패션 시장과 연결하였다. 18세기에 바젤은 프랑스의 Saint-Étienne, 잉글랜드의 Coventry, 독일의 Krefeld 및 부퍼 계곡과 더불어 유럽의 주요 비단 리본 생산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1
이 산업은 생산과 유통의 전 과정을 통제한 상인 겸 제조업자, 즉 Bandherren 또는 Bändelherren에 의해 조직되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레반트와 극동에서 생사를 사들여 연사(撚絲)와 염색을 맡기고, 이를 도시와 농촌의 직공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완성된 리본을 거두어 마무리 가공과 포장을 한 뒤, 유럽과 아메리카 시장의 대리인과 거래 상대를 통해 판매하였다. 그들은 직기를 소유하거나 그 자금을 댔고, 도안을 정하고, 직공들에게 지급할 가격을 정하였으며, 시장의 위험을 부담하였다. 도시에 있는 그들의 저택은 주거지이자 사무소이자 창고였고, 동시에 사업상의 만남의 장소였다.
이 장에서는 비단 리본 산업의 조직을 하나의 경제적·금융적 체계로서 살펴본다. 생산의 사슬, 선대제, 상인과 직공의 관계, 시장, 산업의 자금 조달, 그리고 그 위기를 서술한다. 또한 이 산업이 어떻게 바젤의 은행업이 생겨난 자본과 상업적 전문성을 만들어 냈는지, 그리고 염료에 대한 수요가 어떻게 그 뒤를 잇게 될 화학 산업을 준비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주석
- 18세기 바젤 비단 리본 산업과 유럽 리본 생산 중심지(Saint-Étienne, Coventry, Krefeld, Wuppertal) 가운데 그 위상에 관하여는 HLS, 항목 “Posamenterei”; Kreis/von Wartburg (eds.), Basel – Geschichte einer städtischen Gesellschaft, 2000, 18세기에 관한 장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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