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경제와 노동 규제
15세기에 바젤을 통치한 길드는 그 경제도 지배하였다. 각 길드는 시내에서 자신의 수공업이나 업종에 대한 독점권을 가졌다. 길드 구성원만이 그 수공업을 영위하고, 작업장을 열고, 그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길드에 가입하려면 도제 수업과 수년간의 직인 생활을 거쳐야 했고, 장인의 지위를 얻으려면 장인 작품을 제작하고 수수료를 납부해야 했다. 길드는 장인 한 명이 고용할 수 있는 도제와 직인의 수, 재료의 품질, 생산 방법, 일부 제품의 가격, 그리고 노동시간을 규율하였다. 길드는 작업장을 검사하고 위반을 처벌하였다.1
이러한 규칙의 목적은 각 장인에게 적정한 생계, 즉 Nahrung을 보장하고, 어떤 구성원도 다른 구성원의 희생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었다. 길드 경제는 구성원 사이의 충족과 평등의 경제였다. 그것은 수공업자를 경쟁으로부터, 소비자를 조악한 품질로부터, 도시를 사회 불안으로부터 보호하였다. 동시에 그것은 수공업 부문에서의 자본 축적을 제한하고, 혁신을 저해하며, 외부인을 배제하였다. 배제된 외부인에는 이주민, 많은 업종에서의 여성, 그리고 수수료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관념은 금융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자본 축적은 주로 상인 길드에서 이루어졌다. 그 구성원들은 길드 규칙이 같은 정도로 제한하지 않는 원거리 교역에 종사하였기 때문이다. Schlüssel 길드와 Safran 길드의 상인들은 원료를 매입하고, 생산을 조직하며, 완제품을 먼 시장에서 판매하였고, 수공업자와 공급업자에게 신용을 공여하였다. 16세기에 새로운 산업, 무엇보다도 인쇄업과 후에는 견직 리본 직조업이 등장하였을 때, 이 산업들은 부분적으로 전통적인 길드 구조 밖에서 발전하였으며, 흔히 해외에서 자본과 기술을 가져온 이주 기업가들이 이를 이끌었다. 제B부는 16세기의 인쇄업자와 망명자들이 어떻게 바젤의 경제를 변화시켰는지를, 제C부는 견직 리본 제조업자들이 길드의 제약을 벗어난 선대제(先貸制)를 통해 어떻게 생산을 조직하였는지를 살펴본다.
길드 체제는 바젤의 정치 문화도 형성하였다. 길드가 시의회의 선거구를 이루었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이 통치에 직접 대표되었다. 시의회 의원들은 각 길드의 장으로서 자기 업종의 이익을 옹호하였다. 이러한 대표 방식은 정부에 정당성과 안정을 부여하였으나, 동시에 정부를 보수적이고 변화에 저항적으로 만들었다. 바젤의 길드 헌정 체제는 수정을 거치면서 1798년 헬베티아 혁명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 폐지는 1874년 연방헌법이 스위스 전역에 보장한 영업의 자유로 가는 길을 열었다.2
주석
- 바젤 길드의 경제 규제(도제 수업, 장인 자격, 피고용인 수 제한, 품질 관리, 가격)에 관하여는 HLS, 항목 “Zünfte”; Füglister, Handwerksregiment, 1981 참조. ↩
- 상공업의 자유(Handels- und Gewerbefreiheit)는 1874년 「연방헌법」 제31조에 의해 보장되었다. 오늘날 경제적 자유는 1999년 「연방헌법」 제27조(SR 101)에 의해 보장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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