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의 지리
공의회 참가자들은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 전역에서 왔다. 프랑스, 제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폴란드, 헝가리, 보헤미아, 스칸디나비아였다. 이들은 각자 본국에 있는 재원, 곧 주교구, 수도원, 대학 또는 군주의 수입으로 체류 비용을 조달하여야 했다. 이러한 재원을 바젤로 이전하는 과정은 지급의 지리를 만들어 냈으며, 이는 15세기 유럽의 금융 구조를 잘 보여 준다.
이탈리아, 프랑스 및 저지대 지방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이전은 비교적 쉬웠다. 이탈리아 은행가문들은 이들 지역의 주요 도시에 환거래 상대방을 두고 있었다. 이들을 통해 브뤼헤, 아비뇽 또는 베네치아에서 피렌체 은행 앞으로 발행된 환어음은 바젤에서 그 은행의 현지 지점이나 환거래 상대방이 지급할 수 있었다. 제국에서 온 참가자들에게는 뉘른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및 라인 도시들의 상인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였으나, 그들의 네트워크는 이탈리아인들의 네트워크보다 덜 발달해 있었다. 유럽 주변부, 곧 폴란드, 헝가리, 스칸디나비아 또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참가자들에게는 이전이 너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다수는 현금을 지니고 오거나 더 부유한 동료의 신용에 의존하여야 했다.1
이러한 지리는 금융에서 네트워크가 갖는 중요성을 보여 준다. 금융 중심지는 환거래 상대방 네트워크의 한 결절점이며, 그 가치는 연결의 수와 질에 달려 있다. 이탈리아 은행가문들이 15세기 금융을 지배한 것은 가장 조밀한 네트워크를 가졌기 때문이다. 공의회 기간 중 바젤은 지급의 목적지로서 일시적으로 이 네트워크에 편입되었고, 공의회가 떠나자 네트워크도 옮겨 갔다. 현대의 금융 중심지에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금융 중심지의 위상은 다른 중심지, 환거래 은행, 지급결제 시스템, 그리고 무역과 투자의 흐름과의 연결에 달려 있다. 국제 금융 네트워크에서 바젤이 오늘날 차지하는 위상은 상업은행보다는, 그 자체로 중앙은행 네트워크의 중심축인 국제결제은행(BIS)과 이 도시 다국적 기업들의 자금 운용 업무에 기반한다.
주석
- 바젤 공의회 참가자들의 자금 조달과 자금 이전에서 이탈리아 및 독일 상인 은행가들의 역할에 관하여는 Helmrath, 1987; de Roover, 1963 참조. 확인을 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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