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프라이빗 뱅크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이르러 바젤의 여러 상사는 주로 은행 업무를 하는 상사가 되었다. 이러한 초기 프라이빗 뱅크의 이름은 도시의 역사와 Basler Bankverein의 전사(前史)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Bischoff zu St. Alban, Ehinger & Cie, J. Merian-Forcart, Passavant & Cie, J. Riggenbach, von Speyr & Cie가 포함되며, 이들은 1854년에 컨소시엄을 결성했고 이로부터 Bankverein이 탄생하게 된다.1 이 시기의 다른 상사로는 그 기원이 17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프라이빗 뱅크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La Roche & Co, 그리고 19세기 초 알자스 출신의 유대인 가문이 설립하여 역시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Dreyfus Söhne & Cie가 있었다.2
바젤의 초기 프라이빗 뱅크는 가족기업이었으며, 대개 같은 가문이나 인척 가문의 구성원인 파트너들이 소유하고 경영했다. 그 자본은 파트너 자신의 재산이었다. 고객은 상인, 제조업자, 귀족 가문, 그리고 도시와 지역의 기관들이었다. 업무에는 상인과 제조업자에게 단기 신용을 제공하는 환어음 할인, 가문과 기관으로부터의 예금 수입, 부동산이나 증권을 담보로 한 대출, 고객을 위한 증권 매매, 귀중품과 증권의 보관, 그리고 가문 자산의 관리가 포함되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외국 은행의 환거래 은행 역할도 하며 국제 지급을 처리했다.
Dreyfus 은행은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 역사가 바젤 유대인 은행가들의 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A부에서 보았듯이 14세기 말 이후 유대인은 바젤에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제한은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많은 유대인 인구가 살던 알자스의 유대인 상인들은 바젤과 교역했고, 때로는 특별한 조건 아래 도시에 거주하거나 사업을 할 허가를 얻었다. 스위스에서 유대인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를 부여한 완전한 해방은 1866년에야 이루어졌고, 1874년 「연방헌법」으로 완성되었다. Dreyfus 은행의 설립자들은 이러한 제한과 점진적 해방의 맥락 속에서 활동했다. 2세기에 걸친 이 은행의 성공은 유대인 가문들이 바젤 금융 중심지에 기여한 바를 보여준다.3
주석
- 1854년 Bankverein 컨소시엄을 결성한 바젤의 6개 프라이빗 뱅크(Bischoff zu St. Alban, Ehinger & Cie, J. Merian-Forcart, Passavant & Cie, J. Riggenbach, von Speyr & Cie)에 관하여는 스위스 은행 코퍼레이션(Swiss Bank Corporation)의 역사 및 HLS, “Schweizerischer Bankverein” 항목 참조. ↩
- La Roche & Co Banquiers(1787년 설립)와 Dreyfus Söhne & Cie AG, Banquiers(1813년 설립)에 관하여는 각 은행이 발간한 역사서 및 HLS, “La Roche” 및 “Dreyfus” 항목 참조. ↩
- 해방(1866/1874) 이전 바젤에서 유대인 상인과 은행가의 거주 조건, 그리고 바젤의 Dreyfus 가문과 은행의 역사에 관하여는 HLS, “Judentum” 및 “Dreyfus” 항목; Jüdisches Museum der Schweiz의 간행물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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