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통치의 유산
15세기에 바젤시에 대한 주교의 지배가 끝난 뒤, 1529년의 종교개혁은 도시와 주교 사이의 마지막 연결을 끊었다. 그러나 주교 시대는 이 도시의 제도와 문화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첫째 유산은 문장(紋章)이다. 바젤슈타트주(칸톤)의 깃발과 공공건물, 그리고 많은 기관의 로고에 등장하는 바젤슈타트의 검은 주교장은 주교의 지팡이이다. 주교를 추방한 주(칸톤)가 그의 상징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유산은 화폐에 관한 것이다. 시가 주교로부터 취득한 화폐 주조권은 1850년 연방 통화가 창설되어 스위스 프랑이 각 주의 통화를 대체할 때까지 바젤이 행사하였다. 거의 5세기 동안 바젤시는 페니히, 라펜, 바첸, 탈러, 금 굴덴 등 자체 주화를 주조하였다. 바젤의 주화는 그 자치의 상징이자 교역의 수단이었다.1
셋째 유산은 제도에 관한 것이다. Handfeste(특권 헌장)의 관행, 즉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관계를 준계약적으로 규율하는 관행, 길드의 조직, 자치 기관으로서의 시의회, 시 재정, 그리고 공채의 관리는 모두 주교 시대에, 주교의 약화가 시민들에게 남겨 준 공간 속에서 형성되었다.
넷째 유산은 영토에 관한 것이다. 도시와 분리된 바젤 제후주교령은 1792년까지 제국의 한 영방으로 존속하였다. 그 영역은 오늘날까지 스위스 북서부의 정치 지도를 형성하고 있다. 쥐라주, 라우펜 계곡, 베른 쥐라 지역은 모두 주교령 국가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바젤 지역과 쥐라 사이에는 지금도 긴밀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다섯째 유산은 문화에 관한 것이다. 1356년 지진 이후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어 뮌스터언덕에서 라인강을 내려다보는 대성당은 여전히 도시의 상징이다. 그 회랑에는 바젤 명사들의 묘가 있으며, 1536년 이 도시에서 사망한 로테르담의 에라스뮈스는 그 신랑(身廊)에 안장되어 있다. 16세기의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가들은 이 건물의 종교적 의미를 변화시켰으나, 도시의 중심으로서의 위상은 보존하였다. 제B부는 이러한 변화를 추적한다.
주석
- 14세기 말부터 1850년 5월 7일 「연방 화폐법」에 의한 연방 프랑 도입에 이르기까지의 바젤시 주화에 관하여는 HLS, 항목 “Münzwesen”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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